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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민원신청번호 1AA-2004-04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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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5-04 16:56 조회12,4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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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은 지난주에 내가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국민권익위’) 누리집에 올린 민원의 신청번호이다. 작년 11월의 정동칼럼 ‘교육부, 대학 민주화를 가로막는가’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지난 1월과 2월에도 언급했지만,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평생 처음으로 국민신문고를 두드렸다. 민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교육부는 ‘대학재정지원사업 공정성·투명성 제고를 위한 공동 운영·관리 매뉴얼’(이하 ‘매뉴얼’)을 운영 중이다. 대학의 투명성을 확보하여 정부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꾀한다는 지침이지만, 실제 그 내용은 대학의 정상화와 민주화를 방해하고 있다. ‘매뉴얼’은 재정지원 제한은 개인 비리가 아닌 대학의 조직적 비리에 한정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경영진의 불법과 비리를 대학 구성원이 스스로 나서서 밝혀내도 조직적 비리로 규정되며, 해당 대학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거나 불이익을 준다. 극소수 비리행위자의 잘못 때문에 학교를 위해 나서 싸운 교수, 학생, 직원이 자신은 물론이고 동료 교직원과 학생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조리한 지침 탓에 양심적인 이도 학교비리 제보를 주저하게 되며, 제보 자체가 학교의 경영난을 악화시켜 동료들의 따돌림과 공격을 피하기 어렵다. 뿌리 깊은 비리세력이 쌍수를 들어 반길 일이다. 실제로 ‘매뉴얼’에 따라 2018년 8월 4개 대학이 자율개선대학에서 역량강화대학으로 강등돼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외에도 정부 재정지원 감액 등 크고 작은 불이익을 당한 대학들이 도처에 있다.

 

작년 1월 국민권익위는 이러한 불합리에 주목하여 ‘대학의 재정·회계 부정 등 방지방안’(의안번호 제2019-17호)에서 ‘매뉴얼’에 대해 “자체감사로 드러난 비리는 부정·비리대학 제한 완화”라는 개선책을 교육부가 작년 말까지 마무리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개선책은 작년 8월6일 교육부의 ‘대학혁신방안’에도 없었고, 12월18일 발표된 ‘사학혁신 추진방안’에도 없었다. 12월25일에는 모 일간신문이 국민권익위의 권고에 따르자는 의견과 대학 전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내부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교육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는 보도까지 했다. 대체 누가 권고 이행을 반대하는지 모르지만, 정부 중앙부처가 국민권익위라는 국가기관의 결정을 이렇게 휴지조각 취급해도 되는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민권익위의 결정 이후 15개월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은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하고, 이미 불이익을 입은 대학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국외자가 볼 때, 이처럼 명명백백하게 부당한 정부 지침에 대해 한국 대학의 구성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이한 현상이다. 그만큼 ‘촛불’ 이후에도 특히 사립대들은 사학비리와 관의 일방적 통제라는 장애물에 짓눌려 있다.

 

나 역시 반년 전부터 거듭 제기한 문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지칠 지경이다. 내 관심 분야인 교육개혁, 대학개혁에서 현 정부의 헛발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에 민원까지 넣는 이유는 이 일이 교육이라는 특정 분야의 개혁 과제가 지연되거나 좌초되는 현상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거스를 수 없는 ‘촛불’의 진전에 대한 관료층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직결되어 있다.

 

이번 21대 총선 결과는 퇴행적인 수구층 몰락의 신호탄이다.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은 자진 해체하는 수준의 환골탈태 없이는 그 이름과 달리 미래가 없다. 그러나 총선 승리가 곧바로 여권의 안정적 국정운영과 정치적 성공을 뜻하지도 않는다. 당장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위기가 해일처럼 밀어닥치고 있다. 이럴수록 집권여당과 청와대는 초유의 위기에 세심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면서 ‘일상 복귀가 아닌 새로운 일상’을 창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성의 관행과 기득권에 물든 관료조직부터 탈바꿈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현 정부가 훗날 ‘촛불정부’로 평가받을 길이다.

 

국민권익위의 답변이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교육부가 끝내 요지부동이라면, 부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전국 대학 구성원들의 싸움에 나도 뒤따라 나설 수밖에 없겠다. ‘매뉴얼’은 오랜 유착관계인 사학비리집단과 ‘교육마피아’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한다. 그 가장 심각한 폐해는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대학 운영으로 고통받는 교수와 직원이 개혁을 외면하고 일신의 안전과 코앞의 이익에 급급하도록 내몬다는 점이다. 이 문제부터 풀어야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는 고등교육의 담대한 변화가 가능하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경향신문 2020년 4월23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232048005&code=990308#csidxaca0449269d7fbaa97b163f1f841d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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