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노년이 되면 그야말로 원대한 꿈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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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7-28 13:37 조회7,7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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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문제를 따지고 젊은 여성 옆에서 같이 고민하는 동료 할머니,
지금 불고 있는 할머니 바람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길제
살날과 죽을 날이 똑같은 할머니들은 투쟁가로서 우뚝 선다. 김말해 할머니가 들려주는 역사는 새로 쓰는 역사다. 한겨레 자료“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시들어가는 노년기를 성장기보다 늘이려 애써왔다. 그러니 노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노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101살에 유명을 달리한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은 2006년 91살에 <어떻게 늙을까>(2016)를 쓴 이유를 이렇게 썼다. “청춘에 관한 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출산 경험을 다룬 책들도 쏟아져 나오는데” 노년을 다룬 책은 별로 없어서다. 애실이 책으로 보여준 것처럼 ‘할머니’들의 기록이 늘어나고 있다. 이 할머니들은 정형화된 틀로 가둬지지 않는, 몰랐던 ‘미지의 할머니들’이다.김영옥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는 ‘늙은이’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인도, 노년도, 어르신도, 시니어 선배도,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할매나 할배도 다 온전한 자긍심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올바른 이름이 발명되기 전, 그나마 비슷한 ‘할머니’의 정의는 날로 풍부해지고 있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의 김원희씨는 “유골이라면 운송비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박막례 할머니가 유튜브에서 순발력과 유머감각을 뽐낸 지 어언 4년이 지났고, 유튜버 밀라논나는 ‘엘레강스’의 대명사가 됐다.젊은층도 할머니에게 열광한다. 김연수는 다이애나 애실의 책을 읽고 쓴 글에서 “그때 어떤 분이 장래희망에 대해 물었는데 얼떨결에 할머니라고 대답해버렸다. 얼결이라고는 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멋진 할머니들이 정말 많다. 할아버지들은, 글쎄 잘 모르겠다.”(<시절일기>)이런 마음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까. 무루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책의 제목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고 달았다. “나의 쓰기가 할머니의 바느질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할머니의) 손은 오래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않는 손이고, 때로는 그것들을 모두 꺼내 과감히 자르는 손이며, 끝내는 섬세하고 다정하게 깁고 이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낼 줄 아는 손이다. 나이 든 어느 날의 내 손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손이기도 하다.”여기 다정하고 과감한 미지의 할머니들이 있다. 어느 날 내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그 세계로 떠나보자._편집자주# 꿈 이야기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야무지고 당찬’ 꿈이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늘, 포기하지 않고 이 꿈을 꾸고 있다. 대놓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그래도 말해보자.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참조로 삼을 만한 페미니스트 노년 여성이 되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참조 중 하나다. 그렇다 해도 ‘참 야무진’ 꿈이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늙음’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늙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이 꿈을 품은 것 같다. 이 꿈에는 성취 종결 지점이 없다. 죽을 때까지 품고 실현하고, 또 새롭게 품고 실현하길 반복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반응과 태도가 이 꿈의 노선과 형태를 결정할 것이니, 단순히 노력이나 활동, 눈치 보기만으로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도 없다. 어쨌든 나 자신은 노년기를 위해 세운 이 원대한 목표가 썩 마음에 든다.스스로를 ‘노년배우’라 일컫는 윤여정에게도 정치적 기운이 역력하다. 연합뉴스# 할머니 바람: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세요?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떤 할머니가 될 것 같으냐?’ 혹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냐?’라는 질문은 사회문화적 무게를 별로 얻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워크숍이나 강의 등에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거의 모든 30~50대 참여자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나 최근 청년여성들 사이에 ‘시크한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의 불꽃이 펑펑 터지면서,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언설이 인생극장이라는 무대 위에 등장하고 있다. 드디어! 글로벌 셀럽이 된 박막례 할머니나, 여배우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퀴어 사이에서도 ‘워너비’가 된 지 꽤 오래된 윤여정 ‘노년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 밀라노 첫 유학 세대로서 부드럽고 다정하게, 또 우아한 세련됨으로 젊은이들을 구체적인 세상살이로 ‘안내’하는 밀라논나 등이 할머니 ‘바람’의 전위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할머니 ‘열풍’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 하지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말하려 한다.(사실 할머니 ‘열풍’으로 치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경험을 이미 한 차례 했다. 밀양 할매들이 만든, 그들을 향한 열풍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할머니 열풍은 밀양 할매들에서 기원한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놀라운 전위였다. 그러나 밀양 할매들이 지역투쟁 속에 현전하는 몸으로 열풍을 만들었다면, 박막례나 윤여정, 밀라논나 등 지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할머니들은 소셜미디어를 떼어놓고는 상상하기 어렵다.)소셜미디어를 매개로 최근에 부는 바람이 뜨겁기는 하다. 그러나 이 바람이 모든 지대에 부는 건 아니다. 이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기세로, 어떤 형상으로, 얼마나 오래 불 것인지, 과연 어떤 열풍으로 진화할 것인지? 이 글을 쓰는 나를 비롯해 우리는 모두, 어느 연령대든, 이 바람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만들고 지켜나갈 당사자들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4년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100살까지 살 운명 아닌가. 그러나 이런 사실만으로 바람 만들기에 동참하라고 그 의지를 독려하는 건 충분하지 않다. 사회역사 속 할머니라는 존재, 그리고 개인사에서 할머니기(期)라는 시기는 생명-문화의 에콜로지(생태) 관점에서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화론에서 제시하는 할머니 학설은 그 진위가 100% 가려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머니기 다음에 오는 인생 단계가 개인사에, 그리고 사회문화사에 가진 중요성을 환기한다.소셜미디어를 통해 박막례 할머니와 밀라논나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반복하는 단어는 ‘위로’이다. 어쩌면 불안을 넘어 이 할머니들처럼 멋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다. 박막례 인스타그램 갈무리# 할머니는 누구인가친족사회에서 할머니는 변태(變態)하며 존재하는 어머니면서 어머니를 넘어선다. 단순히 어머니가 연장된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가족이나 사회 등 공동체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수행하는 역할이나 책임이 다르기 때문이지만, 달라지는 몸 정체성 때문이기도 하다. 조금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나이 든 여성은 한편으로는 사회의 적절한 구성원, 즉 일꾼-시민으로 자녀세대를 양육하는 책임에서 해방돼 자유롭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생의 유한함을 자신의 몸으로 깨닫기에 욕망할 것과 욕망하지 않을 것 사이에서 더 투명한 분별력이 생긴다. 자신(의 몸)은 개별자로서 소멸하지만, 세대로 이어지는 생명의 생태계 안에서 영속한다는 깊은 깨달음에 접속되기도 한다. 다른 시간 감각이 생기는 것이다. 내일 죽는다 해도 오늘 정성껏 사과나무를 심고 밭을 간다. 이옥남 할머니의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이러한 삶의 놀라운 증언이다. 그가 주름진 손으로 깨알같이 써내려간 일상의 기록은 소멸하지 않는 삶의 충일함으로 젊거나 나이 들어가는 독자에게 ‘내일 끝날 수도 있는 오늘’의 의미를 은은하게 전한다. 변화할 뿐 소멸하는 것은 아닌 생의 이어짐을 느끼지 못하는 노년기야말로 진정 빈곤한 고립의 시간일 것이다.# 할머니 바람의 정치력살날과 죽을 날이 똑같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 할머니들은 치열하고 끈질긴 투쟁가로서 우뚝 선다. ‘밀양 할매들’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밀양 할매들의 투쟁은 목숨을 건 비장한 것이었다. 내가 인터뷰한 할매의 품속에는 ‘내 시신은 가족인 너희들 것이 아니라 대책위 것이다’라는 유서가 있었다. 동시에 밀양 할매들은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며 투쟁하는 사이사이 밭을 갈고 수확해 밥상을 차렸다. 사람들이 모이면 즉석에서 부추전과 호박전을 부쳤다. 전방위적인 생활기술의 달인인 이들 곁에선 일상과 투쟁의 공존을 배우고 훈련하는 게 당연하고 쉬웠다. 김말해 할머니가 들려준 파란만장한 생애사는 그대로 역사의 재해석, 혹은 새로 쓰는 역사였다. 가부장제 국가/민족주의, 자본주의가 내세운 거대 역사나 담론 이면에서 도도하게 흘러온 삶-역사의 맥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미 밀양 할매나 소성리 할매를 알고 있으며, 그 맥에서 어떤 다른, 새로운 삶을, 노년기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성격은 다르지만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한, 좀더 기술친화적이고 세련된 글로컬 도시풍 할머니들이 만들어내는 바람에도 정치적 기운이 역력하다. 예컨대 스스로를 ‘노년배우’라고 일컬으며 윤여정이 날리는 ‘씨원한’ 돌직구는 보수화되기 쉬운 노년에게 효과 만점의 자기성찰을 제공한다. 의미심장한 거울 이미지다. 늙는 것이 두려운 젊은이에게 그는, 퇴행하는 판단력, 쓸데없이 자라는 욕심, 사회심리적 불안 등이 늙는 것과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대단한 해독제요 역량강화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처럼 여자·남자가 매우 상이하게, 젠더화된 형태로 나이 드는 곳에서 윤여정이 펼치는 젠더정치학은 참으로 소중하다.소셜미디어를 통해 박막례 할머니와 밀라논나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반복하는 단어는 ‘위로’이다. 어쩌면 불안을 넘어 이 할머니들처럼 멋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다. KBS 예능 페이스북 갈무리# 할머니 바람의 또 다른 얼굴멋지고 부드럽고 세련된, 그리고 센 할머니들에게 애정의 폭죽을 터뜨리는 청년여성들은 누구인가. 이들이 저 할머니들에게서 발견하는 힘은 무엇인가. 박막례 할머니나 밀라논나 할머니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남긴 댓글, 트위트 등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단어를 하나 찾으라면 ‘위로’일 것이다. 우선 당장 하루하루 겪어내야 하는 힘겨운 생존투쟁에 필요한 위로가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꼰대가 아닌 아주 멋진 할머니, 즉 배려와 공감 능력이 있으며 게다가 ‘성공적’인 할머니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기대와 약속이 있다. 할머니 바람 현상을 파악할 때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 2030(특히 여성)세대의 ‘몸과 마음을 잠식하는 불안’이다. 여성은 ‘젊고 섹시’하거나 그냥 할머니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사회, 그나마 얻은 비정규직 일터에서 성희롱을 업무의 일종으로 강제하는 사회에서 이 여성들이 ‘꿈꿀 수 있는 노년’이 과연 얼마나 가능할까.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안전하게’, 내쫓기거나 내몰리지 않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고, 심지어 살해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둘러싼 구조적 불안을 아예 제거하고는 할머니 열풍의 다면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할머니들과 차리는 우정의 밥상‘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딸들이 할머니와 맺는 우정의 모습은 어떨까. 격세대 간 우정의 힘을 믿는 나로서는 이 질문이 매우 흥미롭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어머니(나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사적 혈연 중심 가족주의 내부의 할머니는 여러 가지로 우정의 파트너가 되기 어렵다. 혈연관계 속 할머니가 아니라 인생을 먼저 산, 나이 든 시민으로 대했을 때 할머니와의 관계가 편안해졌다고 말하는 젊은 여성이 적지 않다. 양육자로서뿐 아니라 사회 내에서도 일정 부분 탈권력화된, 그래서 권력의 문제를 조목조목 따질 수 있는 할머니, 가족 바깥의 ‘할머니 자리’에서 핵 반대와 공장식 축산업 반대, 노동자 착취/구조 반대를 외치는 할머니, 젊은 여성 옆에 자리잡고 앉아 이들의 의제를 같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친구-동료 할머니.나는 지금 부는 할머니 바람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노년이 되고 있는 내가 꾸는 노년의 꿈이다. 노년이 되면 그야말로 원대한 꿈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 많은 여성이 알아차리길!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연구활동가·<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저자
한겨레21 제1372호, 2021년 7월 17일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6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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