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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노무현 '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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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2-21 14:45 조회14,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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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내 편 네 편 가르는 분위기만 가득할 뿐 나라의 방향과 살림살이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쨌건 집권세력은 정책선거를 주도할 책임이 있다. 지금 다시 ‘촛불’의 정신과 민주정부의 정책노선 전통, 특히 노무현의 정책을 되돌아보았으면 싶다.

                  

노무현의 정책은 김대중 정책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발전시킨 것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정책노선의 기본방향은 냉전체제의 이완에 대응하고 집권형 정치·정책 모델을 분권화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시대’와 ‘균형발전’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시대’는 김대중 정부의 ‘동북아 경제 중심’을 발전시킨 정책담론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 부흥 위주의 정책 구상을 했다면, 노무현 정부는 당시 비판적 인문학과 정책학의 연구 경향을 반영한 지역 구상의 골격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는 글로벌화의 진전과 함께 동남아와 중국이 개방정책을 선도하던 시기였다. 당시의 한·중 수교, 중국의 외환개혁, 북한의 기근과 1997년 동남아와 한국의 외환위기는 동아시아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연결된 사건들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 한·미관계, 한·일관계의 동시 진전이라는 방침을 세웠고, 이 방침은 노무현 정부로 이어졌다. 남북관계와 한·일관계가 크게 후퇴한 것은 이명박 정부 이후의 일이다.  

 

‘균형발전’ 정책도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한 차원 더 진전시킨 것이다. 국토라는 물리적 개념이 균형, 복지, 환경 등이 포함된 지역 개념으로 진화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었다. 산업적 측면에서 김대중 정부의 지역진흥산업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지역클러스터 정책으로 진전되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단순한 지역 문제 해결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전략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동아시아의 지경학적 변화에 대응하여 국민 통합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함께 추구하는 대전략이었다. 이 정책이 그 이전의 개발사업으로 귀결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지역에 기초한 분권적 발전이라는 새로운 국가모델의 방향을 제시한 점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노무현 개인의 정책에 대한 관심을 기억하고 싶다. 그의 정책에 대한 몰입과 집념은 김대중에 못지않았던 것 같다. 내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바도 있다. 노무현은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정치권에 진입했다. 초선 의원 시절 그는 5공 청문회의 스타로 부각되었지만, 지역할거 정치에 반대하는 국민 통합 노선에 대한 관심이 컸다. 재야 연구단체들과도 널리 교류했는데, 그때 그는 자료 보자기를 들고 서 있는 연구생의 모습이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한 위원회에 참여했을 때이다. 담당 비서관이 어떤 의견이건 밝혀주면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준비되지 않은 정부의 태도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당시 노무현의 진심이라 느꼈다. 집권 초 최선의 방책을 찾아 널리 의견을 구하는 자세였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세력의 미약, 정책 담론과 실행 능력 부족, 국민적 분열 상태 등 시대적 한계 속에서 좌절이 반복되었다. 

 

노무현은 퇴임 이후 정책 공부에 다시 몰두하려 했다. 큰 틀에서 정책 능력을 지닌 시민사회의 형성에 기여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치적 적대구조는 그가 가려는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 대한 수사가 비극적 사건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의 돌연한 죽음은 깊은 충격과 슬픔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그가 던진 시대적 과제와 국정 비전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정책 역량을 체계화할 시간이 사라졌음이 통탄스러웠다.  

 

노무현이 던진 정책 비전에는 시대의 첫차를 이끌 씨앗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적대적 정치라는 시대의 막차에 막혀 있다. 노무현도 그렇게 붙들린 운명에 침통했을 것이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신문 2020년 2월18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182044005&code=990100#csidxa9a9077964db4da972421c17793d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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