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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지구화와 기후변화는 바이러스의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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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3-05 15:23 조회14,4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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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먼 나라 이스라엘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요코하마에 묶여 있기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일본, 대만, 부산, 홍콩, 베트남, 싱가포르 등지를 순회하였다. 중국의 생산라인이 멈추는 바람에 애플사와 한국의 자동차, 관광, 유학교육 등이 큰 낭패를 겪었다.

 

현재 코로나19는 아시아, 러시아, 북미, 오스트레일리아, 중동,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등 전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지구화의 빛과 그늘 중에서 그늘 부분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이번 사태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서로에게 의존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땅에서 기르고 만들 수 있는 것조차 수만리 바깥에서 굳이 생태 발자국을 찍으며 들여온다. 무역과 사람의 이동이 전대미문의 수준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믿기 어렵겠지만 한때 반신자유주의, 반지구화 운동이 국내외 사회운동의 선두주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화를 어쩔 수 없는 대세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널리 퍼진 것이 10여년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전염병은 모든 것이 연결되는 지구화가 내적으로 얼마나 종이로 쌓은 집과 같이 취약한지를 보여주었다. 돈과 사람만 세계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재난까지도 세계가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감한다.

 

지난주 ‘에너지와 청정공기 연구센터’(CREA)에서 최근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치를 추산해서 발표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생산부문의 에너지 수요, 교통운송 이용률, 건설업 활동 등이 모두 감소했다. 2020년 초의 2주 동안 온실가스 배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약 25%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얼마나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미국과 유럽연합을 위시하여 많은 나라들이 얼마나 온실가스 배출을 중국으로 ‘외주’하고 있었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런 현상은 남반구에서 아주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저가 의류의 홍수 뒤에는 개발도상국 민중의 피착취와 고통이, 환경의 오염과 지속 불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엮는 거대한 인과의 그물망을 읽으면서 이번 사태를 ‘맥락화’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기온상승과 사람과 물건과 바이러스의 교환으로 하나가 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지구적 바이러스 네트워크’(GVN)라는 연구단체가 있다. 전세계 29개국 48개 연구소의 바이러스 전문 학자들이 활동하는 모임이다. 지난해 연례 총회에서 이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해마다 약 3~4개의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되는데 이들 바이러스 대다수가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직접 혹은 모기나 진드기 같은 매개체를 통해 전염된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초대형 밀집 도시들이 많아지면서 바이러스 전파 양상이 대단히 빨리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경향을 부추기는 배경에는 무역과 여행의 지구화 그리고 기후변화가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네트워크는 “지구화와 기후변화는 바이러스의 여권”이라는 표현을 쓴다. 기후위기가 진행되는 한 앞으로 신종 바이러스가 계속 등장, 재등장을 반복할 것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더 나아가 네트워크는 이제 인간의 건강과 동물의 건강과 생태계의 건강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공중보건 전문가, 동물보건 전문가, 식물 전문가, 생태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지구 혹성에 사는 생명 전체의 연계성 속에서 인간 건강을 바라보는 ‘하나의 건강’(One Health)을 지향하자고 호소한다.

 

사람-동물-생태계를 하나로 엮어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으로 건강을 추구하자는 주장은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주요 기관에서 이미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명백히 지구화 및 기후변화와 연결시킨 발상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에게 더 넓은 맥락에서 사태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대형 감염질환 사태가 앞으로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적 규모로 역병이 자주 창궐하면 인간의 생명권과 건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경제사회적 토대를 뒤흔든다. 만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발본적 차원의 성찰에 나서야 마땅하다. 알다시피 생명권과 건강권은 국가가 가용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적 인권이자 국가의 존립 근거가 되는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핵심 인권이 더 자주, 더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면 국가의 대응 방식도 혁명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의료전달체계와 역학 지원 시스템을 지구화와 기후변화의 조건하에서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종합병원의 겉보기 시설이 마치 호텔같이 번쩍거린들 기본적 보건 인프라가 허술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의료민영화다, 의료관광이다 하면서 돈벌이 타령만 했지 보건의료의 참된 목적 따위를 깊이 고민해보았던가.

 

몇년 전 전국 주요 대학들의 학교 소개 안내 책자를 비교해볼 기회가 있었다. 지구화, 세계화, 글로벌화, 국제화 등의 모토가 등장하지 않는 학교가 거의 없었다. 대학의 국제교류는 학문의 상호 자극을 위해 적극 권장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톤이 대단히 구호성이고 시류에 편승하는 것 같았고, 한마디로 들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며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한국의 지구화 담론이 그것의 빛과 그림자를 감당할 만한 토대와 준비 없이 허술하고 성급하게 추진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 때문이다.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 사태와 기후변화를 연결할 줄 아는 생태적 상상력이 인권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석탄, 석유를 펑펑 때는 식으로 사는 한,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할 조건의 창은 그만큼 닫히고, 그렇게 되는 한 사람들의 생명권과 건강권은 계속 나빠질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번 강조했지만 20세기적 시각과 안목, 전통적인 인권관으로는 앞으로 인권을 증진하기는커녕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방어하지 못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하긴 해도 머지않아 정점을 찍고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당장은 경황이 없지만 사태가 진정된 뒤에는 정말 장기적 안목으로 지구화의 결함 특히 '의료자원의 집중과 건강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생명권과 건강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처할 방도를 찾아보면 좋겠다. 총선에 임하기 전, 각 정당이 이런 문제에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도 민주시민의 자세일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한겨레신문 2020년 2월25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97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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