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미·중 갈등 시대의 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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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6-03 14:47 조회8,1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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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굵직한 외교 일정을 앞두고 있다. 5월21일의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6월11~13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번 한·미 회담은 바이든 정부로서는 일본에 이은 두 번째 정상회담이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12일 일본에서 한·미·일 3국 정보기관장 회의가 열렸고, 회의 직후 애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한국으로 건너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이미 물밑에서 큰 줄기가 잡히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발걸음을 보면, 인도·태평양 벨트를 연결하면서 한·미·일 협력구도를 복원하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시점은 바이든 정부의 정책기조가 드러나면서 미국을 축으로 한 정책 톱니바퀴가 강력한 구동력으로 작용하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말의 유길준은 당시 조선이 처한 복합적이고 비대칭적인 상황을 ‘양절체제’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인식한 바 있다. 조선과 청의 관계는 전통적 조공관계와 근대적인 국제법 관계를 공유하는 이중적 양절관계라는 것이다. 당시에 비추어 보면, 현재는 한·미, 한·중, 한·일, 남북한 등 몇 개의 양절관계가 겹쳐진 체제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겹쳐진 관계들의 톱니바퀴는 잘 맞물리지 않고 마찰을 일으킬 때가 많다. 현재는 미·중 갈등이 다층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는 시기다. 그러나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고 있다는 주장은, 현실을 너무 단순화한 것이다. 군산복합체나 국가 차원이 표준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빠른 속도로 분리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소비시장과 연결된 산업에서는 디커플링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중 갈등 격화가 한국의 안보·경제에 큰 부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중 갈등의 범위와 심도를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년까지 유럽연합은 독자적 이익을 위해 중국과의 투자협정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흐름이 바뀌어 유럽의회 비준이 중단되었다. 미국 내에서도 논의가 분분하다. 미국의 항공, 반도체, 화학, 의료기기 등 첨단산업에서 분쟁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 업계의 시각이다. 한국이 복잡한 미·중 갈등에 선제적·주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위태로운 과욕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충격에 유연하고 기민하게 반응하려는 준비 태세가 필요하다. 충격을 흡수하는 방책의 일환으로 남북관계 안정과 한·일관계 진전이 중요하다. 남북관계와 한·일관계가 서로 맞물리는 작용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8년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극적으로 호전된 시기였다. 그러나 2019년 2월 북·미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회담 결렬의 이유로 여러 논의가 있겠지만, 일본의 역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일본은 북핵 문제에 대한 최대한의 압력, 납치자 문제에 대한 해결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하노이 노딜의 배경에는 아베 외교의 영향력이 어른거린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해 가장 먼저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나라다. 일본은 일찍부터 미·일동맹을 토대로 주요 국가를 포함하고 확대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신냉전 구도를 활용하면서 중국·러시아와 독자적 외교를 전개했다. 2020년 말에는 중국이 추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수용한 바 있다.
현재 한·일 간, 북·일 간에 누적된 불신은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동아시아 네트워크의 진전을 제약하고 있다. 한·일관계와 북·일관계 개선은 미·중 간, 남북한 간 갈등에 대응하는 중요한 방책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좀 더 적극적이고 대담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등 생산 네트워크에서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은 분리되기 어렵다. 이제 한·일 간 상호 역할을 인정하는 외교적 비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북·일 간에도 납치자 관련 대화 채널이 마련되도록 돕는 창의적 방안이 강구되길 기대한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경향신문 2021년 5월20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5200300075&code=990100#csidxcf390fe64f653948fa70d844fddd6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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