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정시 비율 논란과 서울대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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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2-13 14:26 조회15,2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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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앞세우자. 작년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입시의 정시 비율 확대 정책은 적절하게 수정해야 한다. 정시 확대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국민 여론을 거듭 검토한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따라서 교육부는 그 결정에 담긴 타당한 취지를 더 나은 방법으로 대입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서울대는 기회균형 선발제도의 실질적 확대를 통해 자신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대입제도 논란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의 공정성 시비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식 제도의 이식이라 할 학종이 가진 자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적 의식은 널리 퍼져 있었지만, (선정적 언론보도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여론이 학종을 ‘금수저’ 전형으로서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는 사실에 대해 안이했던 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정시 비율을 확대하면 형식적 공정성은 개선될지 몰라도 고교 서열체제에서 일반고 학생들이 더 불리하다. 교육부는 서열화된 고교체제가 학종에 반영됨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수능전형에서 더 뚜렷이 반영된다는 객관적 자료가 엄연하다. 지난해 11월 교육부의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조차 수능 위주 전형보다 학종에서 국가장학금 수혜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가 공정하다고 말할 근거가 희박해진다.
정시 확대의 치명적 약점은 미래형의 창의적 인재를 기르기 위한 고교 교육과정 혁신 로드맵이 혼란에 빠져 수습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2025년에 고교 학점제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이는 교사별 평가제, 절대평가제와 함께 운영되어야지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흔들린다. 점수 따기와 줄 세우기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전면적 혁신을 앞두고 편협하게 해석한 ‘공정성’ 탓에 교육개혁이 퇴행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정시 확대에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이 작용했음은 최근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인터뷰가 재확인해준다. 또 청와대가 4월 총선 득표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국정운영을 위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니 이 결정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권 초기에 수능 절대평가제 전환에 걸린 제동도 코앞의 국민여론 악화를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나는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입시 개혁안은 너무 이상주의적이라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시 확대는 자승자박이다. 교육이 ‘희망 사다리’가 되기 힘든 현실이며, 대입제도 개편으로 사회적 불평등 완화를 꾀하기 어렵다. 실제 서울대 학부생 중에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인 소득 8분위 이하는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이 현실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역설적으로 바로 여기에 서울대의 할 일이 있다.
서울대 교수들은 점수 좋은 학생을 열심히 가르쳐봐야 학문의 길보다는 법학전문대학원이나 (폐지 전의) 의학전문대학원, 고시나 공기업 시험에 몰리는 현실을 이미 겪었다. 그러니 당장의 성적은 떨어져도 잠재력이 큰 학생을 뽑아 학부교육의 활력과 다양성을 강화하면, 특히 기초학문에서 공부의 가시밭길을 택할 후학도 많아지지 않을까. 최소한 현재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며, 다른 대학보다 정부 지원을 훨씬 많이 받으면서도 다수 국민과 동떨어진 귀족학교라는 오명을 피하는 길이다.
가령 기존의 지역균형전형을 강화하여 지난 3년간 서울대 입학생이 없는 고교나 지역을 대상으로 합당한 절차를 통해 몇 명씩 추천받아 자질과 잠재력을 평가하여 선발하면 어떨까? 첫 단계로 50~100명만 뽑아도 학과별 배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속한 인문대학의 경우 수시 지역균형과 정시 광역에 각각 약 50명 안팎의 입학정원이 있다. 이 정원의 일부를 교수진의 논의를 거쳐 ‘실질적 기회균형’의 뜻에 맞게 배정해도 좋다. 또 전국에서 유일하게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는 자유전공학부와 어울리는 일이라서 일부 정원을 시범적으로 돌릴 수 있다. 장애물이 적지 않지만, 차차 성과가 입증되어 확대되면 서울대 외의 대학들도 따라오면서 고교교육 정상화를 돕게 된다. 마침내 입학제도가 대학의 자율에 맡겨지는 일도 앞당겨진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왜 제1야당이 객관적 근거도 없이 정시 50% 확대를 당론으로 삼고 보수언론은 정시 확대를 지지하는지 찬찬히 되돌아봐야 한다.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총선 출마 포기라는 큰 결단을 내린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분발도 기대된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경향신문 2020년 1월30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1302043005&code=990308#csidxfad49d6ea6b974fb0753f2f31432a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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