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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미국의 '모순적 명령'이 던지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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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3-05 15:20 조회14,3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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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중국의 기나라에 근심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면 피할 곳이 없을 것이라 걱정하여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 기우, ‘기나라 사람의 근심'이라는 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근심이 기우는 아니다.

 

지금 온 나라가 코로나19로 근심투성이다. 확진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2·3차 감염자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해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위기는 눈앞에 있지만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고 설령 자신이 감염됐더라도 당장 알 수도 없으니, 그 불확실성이 위기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눈에 보여야 피하든 막든 대처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막을지 근심만 깊어간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위기가 오고 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처럼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미국 등 전세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 위기는 바로 머리 위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바로 영향을 받을지 확실하지도 않은 불확실성에 있어서도 코로나19와 같다. 물론 코로나19와 다른 점도 있다. 당장은 ‘확진자’도 사망자도 없으니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전혀 없다. 아무도 근심하지 않으니 더 큰 문제다. 다들 손 놓고 있다가 벼락처럼 뒤통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위기는 3월쯤 그 한 자락을 보일 수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함께. 현재 한·미 군사당국은 이를 연례행사로 당연시하고 있다. 양국 정부의 합의에 따라 전시작전권 이양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추가적 의의를 붙이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도 아무런 위기의식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개별관광을 공론화한 뒤 이를 위해 분주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고 코로나19로 북이 국경을 완전히 봉쇄했으니 앞으로도 진전이 있을 전망은 보이지 않지만 별다른 위기의식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걱정이다. 북은 지금도 핵무기를 더 만들고, 핵탄두와 미사일의 성능을 개량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북은 이미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 개발을 중단 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나갈 것”이라며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제거했다. 또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미 미국은 올해 국방예산으로 738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액수를 책정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지배의 사명”을 운운하고 있다. 미 의회는 북이 대량살상무기를 중단·종식해야 제재를 중단·종식할 수 있다며 기존 입장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다. 예정대로 올해 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한다면 북이 공언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을 보게 될까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걱정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 미국 국방수권법에는 매달리고 싶은 희망의 근거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69년 된 한국전쟁의 종식을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신뢰할 만한 외교 과정을 추구해야 한다.” 외교를 통해서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라는 의회의 명령이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는 올해,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명령이다. ‘북한 비핵화’로 좁게 규정한 것이 걸리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한국전쟁 종식을 동전의 앞뒷면으로 보는 것도 획기적이다. 이 둘을 같이 추구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다만 그다음 조항이 모순적이다. “북한이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에 위협을 제기하지 않을 때까지 미국은 신뢰할 만한 방어와 억지 자세로 동맹국과 함께 북한을 억지해야 한다.” ‘억지 자세’는 북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사용 위협을 말한다. 북이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을 때까지 미국은 군사력과 핵무기로 북을 위협하라는 것이다.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연합군사훈련도 계속하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 국방수권법은 미국의 막대한 군사력과 핵위협을 지속하면서 외교를 통해 평화를 달성하라는 모순적 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렸다. 외교에 방점이 찍힌다면 ‘코로나19보다 더 센 놈’이라는 근심은 기우가 될 것이다. 방어와 억지에 힘이 실린다면 기우는 현실이 될 것이다. 코로나19와는 달리 이 위기는 사전 방지가 가능하다. 지금 위기의식을 갖는다면.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20년 2월24일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93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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