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언] '나'를 이루는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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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6-29 11:47 조회11,2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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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팔레트
강혜빈 지음/문학과지성사(2020)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잃고 슬픔에 오래 잠기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해당 감정에 머무느라 일상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는 상황이 생기고, 거기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자신을 어찌할 바 몰라 망연자실해 있기도 한다. 어떤 상실은 삶을 바꾼다.
강혜빈의 시 ‘미니멀리스트’에서는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잃고 ‘찢어진’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이가 도리어 상실의 세계를 모험하기로 작정할 때를 구체적으로 펼친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 이 시는 무언가를 상실하면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표시해둔 지도처럼 우리 손에 쥐여졌다.
“찢어진 이불을 덮고 잤다// 오랫동안/ 찢어진 마음에 골몰하였다// 깨어날 수 있다면/ 불길한 꿈은 복된 꿈으로// 빛 속으로 풀쩍/ 뛰어든 고라니가 무사하므로/ 오래된 건물이 무너짐을 마쳤으므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므로// 기지개를 켜듯 이불의 세계는/ 영원히 넓어지기// 모름지기 비밀이란 말하지 않음으로/ 책임을 다 한 것으로// 어디든 누가 살다 간 자리/ 어디든 누가 죽어간 자리// 오랫동안 비어 있던 서랍은/ 신념을 가지게 된다// ‘가끔 우리가 살아 있는 게 기적 같아’// 이 세계에서는 매일매일 근사한 일이/ 무화과 스콘 굽는 냄새가/ 누군가/ 3초에 한 번씩 끔찍하게// 복선을 거두어 가지 않으면서/ 한 줌의 사랑을 꿰매어주면서/ ‘혹시 사람을 좋아하세요?’// 더는 버틸 수 없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기로//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될 때/ 긴 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울 때// 아래층에서 굉음이 들렸다”(강혜빈, ‘미니멀리스트’ 전문)
“찢어진 이불”을 덮고 잘 때 나타나는 꿈은 찢긴 만큼의 상처가 비치는 곳일 수 있지만, 시에서 화자는 그 꿈이 “깨어날” 것임을 알고 있는 듯하다. 꿈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없듯이 오래되어 무너진 것들은 재건되지 않고, 떠난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찢어진 이불”은 찢어졌다는 그 이유로 무언가를 덮을 수 있고 꿈꾸게 만드는 면적이 이전에 비해 더 넓어졌달 수도 있는 것. 화자는 “누가 살다 간 자리”와 “누가 죽어간 자리”와 같이 비어 있는 “서랍”을 자신이 품었으므로, 또는 찢기고 벌어진 틈이 자신에겐 있으므로, 거기에 어떤 “신념”이 들어설 수 있으리라 여긴다. 빈 공간과 틈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영원히 바뀔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찢어진 마음”으로 인해 생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이란 ‘내’가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그만큼 연결되어 있음을, 그 연결이 ‘나’를 이루고 있음을 이해하는 삶일 것이다. 연결, 그것은 상실로 인한 ‘나’의 감정이 오래 지속되는 이유이자 그럼에도 ‘우리’가 어딘가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비밀의 다른 ‘미니멀한’ 이름이다.
“무화과 스콘 굽는 냄새”가 나는 “근사한 일”의 틈으로 “끔찍”한 일들이 들이닥친다 해도, 좋아한다고 답할 수 없는 질문 사이로 사랑이 꿰매어지기도 하는 세상은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쓰인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또한 ‘연결’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닷페이스’의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의 구호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참조).
양경언 문학평론가
힌겨레신문 2020년 6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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