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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정전협정, 평화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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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7-31 10:37 조회10,1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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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67년 전 오늘(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전투를 정지한 상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 것은 유례를 찾기가 어렵다. 더욱이 정전체제 속에서 한반도는 무한 군비경쟁에 빠졌다. 정전협정은 평화의 끝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평화의 시작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휴전은 대개 국부적 또는 일시적 ‘전투 휴식’ 상태를 지칭한다. 물론 전쟁은 계속되는 상태다. 가장 유명한 휴전이 제1차 세계대전 중의 ‘크리스마스 휴전’이다. 아직도 1차대전 초기였던 1914년 12월 첫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영국, 프랑스, 독일 군인들이 잠시 싸움을 쉬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참호에서 기어 나와 ‘적군’과 만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함께 불렀다. 선물을 주고받고 음식을 나누고 축구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전투를 벌이던 ‘서부전선’에서는 11월부터 그다음 해 1월 초까지 이런 휴전이 이어졌다.

 

이러한 비공식적 휴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선 지휘관들이 군인들의 자발적인 휴전을 “개탄할 일” 또는 “불행한 사태”라며 좋게 보지 않았다. 전쟁 중에 군인들이 적군과 교류하면 계속 싸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휘관들은 군인들의 자발적 휴전을 금지했고, 규율 위반 또는 명령 불복종 등으로 처벌하기도 했다. 또 전쟁이 계속되면서 인명 피해가 늘어나자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도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에만 해도 명령 때문에 싸워야 했던 군인들도 점차 ‘적국’에 대한 적개심을 갖고 싸우게 됐다. 적개심 때문에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국가 간 전쟁 때문에 적개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 결과 1915년부터는 휴전이 점점 더 어렵게 됐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제 군대 최고사령부가 나서야 했다. 연합국 사령관 페르디낭 포슈 장군이 나서서 독일군과 협상한 끝에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1918년 11월11일 11시에 발효됐다.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의 육해공 전투를 모두 정지하기로 한 이 정전협정은 통상 1차 세계대전의 종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11월11일을 공휴일로 정하여 영국은 ‘정전의 날’, 프랑스와 벨기에는 ‘기억의 날’, 미국은 ‘참전군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정전협정으로 국가 간의 전쟁 상태가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교전국가 사이에 있었던 정치적 이견을 해결하고 전후 국경선 등의 문제에 합의가 이뤄져야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전국들이 1919년 1월부터 파리에서 만나 협상을 시작했다. 일련의 평화조약들을 체결하고 국가연맹을 창설하면서 1920년 1월 파리강화회의는 막을 내렸고, 1차 세계대전도 공식적으로 종결됐다. 그사이 정전협정은 세차례나 연장되어야 했다.

 

한국전쟁은 여러모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도 전쟁 초기에는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휴전들이 있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싸움이 계속되면서 피가 피를 부르는 원한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기 시작했다. 피가 땅을 적시고 강을 이룬 후에야 교전국들은 깨달았다. 군사력으로는 남진통일도 북진통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일단 싸움은 그만하자는 정전협정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정전은 평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승전국도 패전국도 없었다. 정전협정이 발효된 지 거의 9개월 후인 1954년 4월에나 정치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렸지만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결렬됐다.

 

그 뒤 정전체제는 한반도에서 무한 군비경쟁을 초래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3년 후인 1956년 7월 이미 미국 국가안보회의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북한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한민국은 공군력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병참지원이 제공된다면 독자적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다.” 1958년 1월 미국이 한국에 원자탄을 도입할 때 그 목적의 하나가 한국군의 감축이었을 정도다. 물론 한국의 군사력은 북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빌미가 됐고, 미국의 핵무기 도입은 북의 핵무기 개발을 촉발했다. 그리고 북의 군사력 강화는 한국의 군비 강화와 미국의 핵우산 강화 및 제재의 확대로 이어지며 군비경쟁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이제 휴전선에서의 총알 한발은 한반도의 핵폭발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정전 상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김정은에게 주는 선물’이 될 수 없다.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은 정전협정의 핵심적 내용이자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당위이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20년 7월 26일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52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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