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대학 구조조정의 외길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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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9-16 10:21 조회21,2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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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고등교육 정부 예산안이 올해의 본예산 대비 7251억원 증가한 10조8057억원으로 편성됐다. 역대 최대 규모의 증액이라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공영형 사립대’ 예산은 없다. 교육부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요청한 시범사업을 위한 예산은 100억원 미만이었지만 모두 삭감되고 말았다. 현 정부 대학정책의 허점이 심각하다.
지난 8월6일 교육부는 ‘인구구조 변화와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대학혁신 지원 방안’(이하 ‘대학혁신방안’)을 내놓았다. 발표자료 첫 장의 첫 문장이 현행 입학정원 49만7000명을 유지하면 2024년에는 약 12만4000명의 입학생 부족이 예상된다는 것이니, 교육부도 곧 닥칠 현실의 절박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학혁신방안’을 들여다보면,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은 외면한 채 강제적인 정원 감축 위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펴던 당국은 힘이 부친 나머지 드디어 ‘자율’의 명분 아래 국가의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아예 내팽개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말 ‘대학혁신방안’대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4, 5년 후부터는 지방대와 전문대부터 문 닫을 학교가 속출할 것이다. 지역주민들의 성난 표심을 의식하여 폐교 대상 대학이 생긴 지역 국회의원들은 뒤늦게 서로 힘을 합쳐 정부를 상대로 대책을 내놓으라고 법석을 떨 것이다. 한계사학 ‘소유주’의 다수는 교육부가 도입을 검토한다는 ‘해산 장려금’ 제도의 득실을 계산하며 실질적 자구책 없이 버틸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방 국공립대를 제외하면 대학이 황폐화되며, 이 과정에서 결국 사회적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본다. 기존의 구조조정 정책도 수도권보다는 지방대, 4년제 대학보다 전문대에 일방적으로 불리했다. 앞으로는 지방대, 전문대 학생들이 운영난에 시달리는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심지어 학교가 없어지는 꼴을 더욱 자주 겪게 될 것이다. 여기서 비롯되는 사회적 갈등은 차기 정권의 심각한 정치적 부담거리이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이 대책을 마련할 때이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외길 해법은 공영형 사립대 사업을 통한 구조조정이다. 2주기 대학평가(2017~2019)의 구분에 따른 소위 ‘자율개선대학’에 끼지 못한 ‘역량강화대학’도 그 책임은 대학 경영진에 있지 교직원은 별로 죄가 없다. 학생이야말로 억울한 피해자이다. 아무리 대학평가결과가 나빠도 촛불혁명의 과정에서 비리집단을 몰아내고 학교를 새롭게 바꿔내고 있다면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사학이다. 이런 학교들을 지원하여 연구와 교육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 지역산업과의 역동적인 연계 또한 강화해야 한다. 입학정원을 줄이더라도 교원 규모를 감축하거나 교육과정과 학생 서비스를 축소하지 않고 오히려 내실을 기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한계사학들의 규모도 크지 않아 시범사업 예산도 많이 들지 않는다. 학교당 50억원씩 10개교를 시범대학으로 선정해도 연 500억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범사업을 2, 3년만 안정적으로 지속해도 효과가 나올 것이다. 우선 사학의 비리세력은 발붙일 곳이 점점 없어진다. 한계사학의 구성원들은 공영형 사립대 시범대학의 가능성에 큰 영향을 받게 되어 위기 상황에서도 대학 민주화가 탄력을 얻는다. 대학 내의 민주적 소통과 의사결정 절차가 확보되면 학과 신설과 폐지, 입학정원 축소, 인근 대학들의 통폐합 같은 난제를 감당할 수 있다.
기재부가 공영형 사립대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국공립이 아닌 사립 고등교육기관 비중이 훨씬 더 높은 경우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뿐이다. 일본은 사립대 운영예산의 상당한 비중을 정부가 지원하지만, 우리는 사학의 등록금 의존도가 너무 높다. 일본 정부의 사립대 지원 수준을 목표로 한다면, 기재부로서는 예산 부담을 우려할 만하다. 그렇다. 예산은 든다. 심지어 서울의 ‘상위권’ 사립대도 자발적 정원 축소를 하면 상응하는 지원을 함으로써 대학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어쨌든 비용보다 혜택이 매우 큰 사안이며, 현재 연 4조원 규모의 국가장학금 제도 개선을 통해 재정 절감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일하다 안타깝게 숨진 한 젊은이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유사한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젊은이는 월 144만원의 박봉에서 100만원씩을 대학 공부를 위해 저축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국에 이런 청년들이 수없이 많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고등교육 투자 확대는 국가의 큰 책무이지만, 우리의 대학개혁은 이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어야 옳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경향신문 2019년 9월 5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052040005&code=990308#csidxb573ec806bd6f2a9121f07b2b3885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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