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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적폐의 뿌리에 대한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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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12-30 13:55 조회16,8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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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자성어를 보고
 
교수신문에서 매년 연말에 전국 교수들 대상의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우리 사회의 지난 한해를 바라보는 교수집단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이 조사로 일반화될 수는 없더라도 이를 통해 어느정도 지식인들의 현실인식을 읽을 수 있었고 올해도 그렇다. 머리가 둘인 새의 공생적인 관계를 말한 “공명지조(共命之鳥)”가 33%의 지지를 받아 1위로 선정되었고, 물고기의 눈과 진주가 뒤섞여 구별하기 어렵다는 의미의 “어목혼주(魚目混珠)”가 29%로 뒤를 이었다.

공명지조는 두 머리가 서로 다툼을 벌인 끝에 새가 죽고 만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므로, 이 사자성어가 다수 교수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격화되고 그것이 공멸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상황인식을 보여준다. 목하 벌어지고 있다시피 여야격돌은 ‘협치’라는 말이 정치판에서 사라질 정도로 일상이 되어왔고, 조국 사태가 그 예이듯이 국민들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대규모 집회의 세 대결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도 그런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같은 현실분석에 머무는 순간 해묵은 양비론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극한대립의 정치상황도 그렇고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대결도 그렇고,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한 모색은 이같은 분석을 넘어선 비판적 인식을 필요로 한다.

조국사태를 두고 벌어진 사회갈등을 염두에 둔 사자성어인 어목혼주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권력비리 엄단이냐 검찰개혁이냐의 대립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렬 검찰총장 가운데 누가 물고기의 눈이고 누가 진주인지 가리기 힘든 국면이라는 판단은 그것대로 유효하다. 물론 뚜렷한 입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선명한 경우도 없겠지만, 위법여부를 가리는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고 어느 한쪽을 전적으로 옳다고 하기에 곤란한 지점들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같은 중립적 입장은 판단의 유보를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칫 양비론으로 떨어질 위험도 존재하는 것이다.

올해의 사자성어 1, 2위로 선정된 공명지조와 어목혼주는 일차적으로는 현재의 상황인식을 드러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 대한 비판도 깔려 있고 이를 넘어서 지향해야할 가치를 말하는 측면도 있다. 공명지조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공존의 윤리를 회복하자는 주장이라면 어목혼주는 앞으로 불명확성이 해소되는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요청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사자성어들을 통해 부각된 갈등과 대립, 반목과 혼란이라는 현상은 이 시대의 과제라고 할 민주주의의 질적 진전을 위한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수순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민주주의가 한단계 성숙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불평등구조가 개혁되고 불공정한 기득권 즉 적폐에 대한 청산이 요구되며, 이 작업이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가 짚어보아야 할 것은 과연 이 정부가 국정이념으로 내세운 ‘공정과 정의’를 위한 적폐청산의 과업이 어느정도 진척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가령 조국 사태는 이 적폐의 뿌리가 진영논리를 넘어서 가진 자들의 일상화된 특혜와 관행에까지 뻗어 있음을 드러냈다. 검찰개혁이라는 정치적 과제와 별도로 조국 사태는 이같은 우리 사회의 심원한 불평등구조를 확인시켰고, 단지 진보와 보수의 대립만이 아니라 진보 내부에서의 일정한 이견과 분화가 일어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국 사태를 위시한 근자의 상황은 진정한 민주화의 실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이 긴요함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본다.

교수사회의 터전인 대학의 현실과 그 민주화의 진척은 어떤가? 대학민주화가 이 정부 들어와 중요한 의제가 되어 왔지만, 최근의 추세는 대학의 구조조정과 더불어 비정규교수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면서 교수사회 내부의 기득권 질서의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는 강사법의 왜곡에서도 보이듯 정규교수 중심의 대학 기득권 질서는 변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내부의 집단이기주의는 더 심해지는 듯도 보인다. 대학 또한 이같은 기득권의 뿌리를 해체하고 대학의 공동체적 성격을 복원하고자 하는 새 패러다임의 구축이 절실해진다. 그런 점에서 공명지조와 어목혼주라는 사자성어는 비단 우리 사회만이 아니라 대학에도 적용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윤지관 덕성여대 명예교수
 
교수신문 2019년 12월15일
원문보기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6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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