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2020년, 낡은 기득권 해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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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1-10 16:50 조회16,3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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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새로운 십년대가 시작되는 해이자, 100년 단위로 끊자면 ‘대한민국 시즌 2’가 시작되는 첫해이다. 그만큼 새해에 큰 의미를 두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작년 내내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던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이 해가 바뀌기 직전에 국회를 통과했다. 두 법안 모두 20, 30년을 넘긴 해묵은 개혁 과제였지만, 번번이 기득권의 저항 앞에 좌절되거나 왜곡되곤 했다. ‘촛불혁명’으로 큰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므로 개정 선거법이 애초의 구상보다 후퇴했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또 공수처법에 우려할 점이 있더라도 군사정권 종식 이후 막강한 권력으로 변질된 정치검찰의 폐해에 비할 수는 없다. 새 제도를 운용하다가 발견되는 허점이나 미흡함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선하면 된다. 낡디낡은 세력을 무너뜨릴 전략적 고지를 확보했다는 사실 앞에 잠시 마냥 기뻐해도 좋다.
올 4월에 있을 21대 총선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는 없지만, 정치지형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도 지난 2월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충격 탓에 2019년 내내 지지부진했지만, 총선 이후에는 안정적인 길을 찾으리라고 낙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득권의 부단한 해체작업 없이 변화는 오지 않는다. 가령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려 매달리는 행태는 주권자의 힘으로 가차없이 척결해야 한다.
어쩌면 기득권의 해체보다 자발적인 양보나 포기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정말 ‘혁명적인’ 변화는 개혁 대상인 동시에 개혁 주체이기도 한 모순적인 집단 내부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이 집단은 대개 ‘전문직’의 범주에 속하는데, 공무원, 법조인, 교사와 교수, 의사, 직업군인, 기성 정당과 정치인 등이 대표적이며 때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도 포함될 것이다. 개혁은 적어도 이들의 일부가 적극적 동참세력이 되어야 가능하다.
공수처법은 검찰 내부의 유능하고 양심적인 인력을 살리는 효과를 낼 것이다. 검찰조직 자체는 개혁 대상이지만, 개혁 주체가 내부에 없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널리 알려진 임은정, 서지현, 안미현 검사 등을 떠올려도 좋다. 이들이 모두 여성인 점도 시대변화를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사실이니, 이명박 정부 시절 터진 추악한 ‘벤츠 여검사’ 사건과도 비교해볼 법하다. 사법부 개혁의 경우도 검찰과 다를 바 없다.
교육 분야도 개혁의 주체와 대상이 겹치는 현상은 어김없이 벌어지며, 그 양상도 다양하다. 투표할 권리 외에 거의 모든 정치적 권리를 제한받는 초·중등 교사의 처지는 한심할 지경이며, 그들이 대변하는 현장의 정당한 목소리는 손쉽게 무시된다. 하지만 개혁의 선봉이 되어야 할 그들 또한 모순투성이 현실 속에 대학교수와 마찬가지로 개혁의 대상인 면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물론 현장과 유리된 교육 관료들이다. 비리사학과 유착된 썩은 자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훌륭한 공무원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낡은 구조가 걸림돌이다.
지난해 11월 칼럼에서 나는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공정성·투명성 제고를 위한 공동 운영·관리 매뉴얼’의 모순을 짚었다. ‘매뉴얼’은 대학 구성원이 경영진의 불법과 비리를 밝힌 경우라도 해당 대학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거나 불이익을 준다. 학교를 위해 나선 교수, 학생, 직원이 극소수 비리행위자의 잘못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고 동료 교직원과 학생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이처럼 부조리한 매뉴얼 탓에 학교비리 제보를 주저하게 마련이며, 제보행위 자체가 학교의 재정난을 악화시켜 동료들의 냉대와 공격을 피하기 어렵다.
매뉴얼은 대학 정상화를 가로막는다. 그래서 작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학의 재정·회계 부정 등 방지방안’(의안번호 제2019-17호)에서 교육부가 작년 말까지 “자체감사로 드러난 비리는 부정·비리대학 제한 완화”라는 개선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12월18일 교육부가 발표한 ‘사학혁신 추진방안’에서 이 핵심 과제는 쏙 빠져버렸다. 12월25일자 모 일간신문의 보도는 국민권익위의 “권고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과 대학 전체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내부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는 교육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권고 이행을 훼방 놓는 이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교육 현장 위에 군림하는 이 오만한 자세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신분제의 공고화’를 주장하며 ‘민중 개·돼지론’을 입에 올린 교육부 엘리트 관료가 불현듯 떠오른다. 교육부의 양심적 공무원들은 여전히 짓눌려 있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경향신문 2020년 1월2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1022039015&code=990308#csidx6cb3e2d70002d2eb3b797d46433a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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