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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임진강은 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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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2-13 14:21 조회15,7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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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뭇 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사람들은 그 강에도 선을 긋고 땅에도 금을 그어 넘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말뚝을 박고 철조망까지 둘렀다. 지뢰도 깔고 총과 대포의 화점까지 늘어놓아 접근하기조차 두려운 무인지대를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임진강은 흐른다.

 

그 강물은 노래가 되어 재일조선인들의 가슴에 오늘도 흐르고 있다. 노래 <임진강>은 임진강만큼이나 분단의 수난을 겪었다. 경기도 출신 시인으로 월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까지 지은 박세영의 시작품이었다. 1957년 고종환이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다. 이북에 있으며 이남에 두고 온 가족과 벗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노래했다.

 

'내 고향 남녘땅 가곺아도 못 가니
림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이 <임진강>이 1960년대에 일본까지 흘러갔다. 재일조선인들의 가슴을 쳤다. 해방 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 대다수는 제주도나 경상도 등 이남 출신이었다. 남북분단에 반대하고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이던 이들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를 결성하면서 ‘반한’ 인사로 낙인이 찍혔다. 고향은 남녘땅이건만 가고파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휴전선 이북에서 남녘땅을 그리워하던 노래가 현해탄을 건너와서는 자연스레 재일조선인들의 ‘원한’을 싣는 노래가 되었다.

 

이즈쓰 가즈유키가 감독한 영화 <박치기!>에도 임진강이 흐른다. 1960년대 교토. 일본인들은 여전히 ‘조센진’을 멸시하고, 그들의 차별에 조선인들은 분노한다. 차별과 분노로 부글부글 끓던 혈기방장한 일본 학생들과 조선 학생들은 한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폭발한다. 강변 모래사장에서 패싸움이 벌어져 각목이 날고 박치기가 작렬한다. 그 와중에도 화해하려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싹 틔우는 사람이 있다. 고스케는 임진강을 배워 경자에게 다가간다. 원곡의 가사를 바꿔 부른다.

 

 

'임진강 하늘 저 높이 무지개여 피어라

 

 

임진강아 이 내 심정 고향 땅에 전해주오' 

 

그 영화가 개봉된 지 어언 15년, 고스케가 소망했던 무지개는 피었을까? 영화 속에서 일본인 엄마와 조선인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2005년에만 해도 <박치기!>에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최우수 작품상을 수여했던 일본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일본판이라고 할까, 집단 간의 증오를 넘어선 사랑 이야기에 상을 준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일본 사회에 남아 있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넘어 화해와 사랑의 가능성을 넘보려는 시도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시 진행되던 한반도 평화의 흐름을 타고 일본도 북과 화해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사랑 이야기에 넌지시 담으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차디차다. 영화에서 태어난 아기가 진짜였다면 그 애는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조선인은 일본을 떠나라.” 조선고등학교에 진학한다면 다른 일본 고등학생은 다 받는 무상교육에서 제외되는 차별을 직접 겪을 것이다. 고스케와 경자가 사랑에 성공해 애를 낳아 유치원에 보내려고 한다면 조선유치원에는 보내기 힘들 것이다. 일본 모든 유치원이 무상화가 되었지만 조선유치원만은 예외가 되었으니. 고스케가 꿈꿨던 무지개와는 달리 일본은 재일조선인 차별을 정부가 나서서 제도화하고 있고 법원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일본은 2010년부터 고교 무상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정치적, 외교적 고려 없이 모든 고등학생에게 교육에 관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평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조선학교가 북한과 총련의 부당한 지배·간섭을 받고 있고, 학교 운영의 적정성이 의심된다는 정치적 이유를 들이댔다. 게다가 아베 정부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비상식적인 행정조치를 동원했다. 무상화 신청 절차가 다 끝난 뒤에 조선학교를 지정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신청 당시에 모든 자격요건을 구비했던 조선고등학교는 사후에 취해진 행정조치로 인해 어이없게 무상화 지정에서 배제돼버렸다.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및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이 거듭 시정을 권고했지만 아베 정부는 오히려 2019년 조선유치원마저 무상화에서 배제했다.

 

아베 정부는 이러한 민족차별정책을 시행하며 임진강에 또 하나의 금을 긋고 있다. 한국학교는 무상화 혜택을 받으니 조선학교 배제는 민족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진강은 흘러야 한다. 이 모든 분단과 차별을 넘어.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20년 2월2일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65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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