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위기의 영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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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10-07 12:04 조회19,89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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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국 장관 논란과 검찰개혁 논란이 충돌하는 형국이다. 경제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은 이런 상황이 힘겹다. 최근에도 여러 지인들의 걱정을 전해 들었다. 현재 경제여건이 더 어려운 상황으로 가는 느낌이라는 것, 그래서 평시와는 다른 대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과 가계는 상당한 위기의식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글로벌 악재를 고려해 기존의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힘든 여건이지만 경제정책 당국은 치밀하게 상황을 챙기고 있을 거라 기대하고 싶다. 선진국들에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 마이너스 금리 등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도 여러 종류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얼마 전 시중은행에서 판매한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상품(DLF)이 원금 전액 손실로 확정된 바 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역의 불안감이 고위험 자산의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독일은 여러모로 한국과 비견할 만한 점이 있다. 세계경제는 1990년대 이후 글로벌 밸류체인이 진전되었다.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에 참여해 산업과 무역 성장을 주도한 나라가 독일, 한국, 중국 등이다.
독일과 한국은 제조업과 수출 비중이 높아 미·중 무역전쟁의 충격을 가장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국내총생산 중 공업(에너지 포함) 비중은 중국 33.9%, 한국 33.6%(2017년), 독일 25.8%, 일본 25.5%, 미국 14.7%(2017년) 등이다. 독일의 수출의존도는 39.4%로 한국의 37.5%보다 높은데, 무역전쟁 당사자인 중국은 18.6%, 미국은 8.0%이다(2017년 기준).
첨단부문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과 한국은 중국의 산업 고도화에 따른 충격 위험이 가장 높은 두 개 국가다. 특히 중국과 연결된 자동차·전자산업 네트워크의 변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중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017년 2901만8000대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세로 전환했다. 벤츠, 폭스바겐, 현대, 푸조, 포드 등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고, 일본의 스즈키는 아예 중국시장을 포기했다.
독일과 한국은 중국 이외의 파트너와도 갈등하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독일에는 유럽연합(EU) 탈퇴를 시도하는 영국과의 문제가 있고, 한국은 일본과의 역사·경제·안보 갈등이 겹쳐 어려움 속에 있다.
독일은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의 중심에 있고 한국은 그보다는 외곽에 있는 편이다. 2020~2021년에 본격화될 침체 국면의 영향을 어느 쪽이 더 세게 받을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산업충격을 흡수할 내부구조는 독일이 한국보다 훨씬 탄탄하다고 할 수 있다. OECD에서 내놓은 최근 실업률은 독일은 3.07%, 한국 4.03%, 미국 3.63%, 일본은 2.37%이다. 청년 실업률(15~24세)은 독일 6.2%, 한국 10.5%인데, 독일은 통일 이후 최저치 수준, 한국은 사상 최고 수준에 가깝다.
생산의 지역구조를 보면 독일에 비해 한국이 충격에 훨씬 취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독일은 동서독 격차가 있지만 넓은 서독 지역에는 경제력이 고루 분포한 편이다. 반면 한국은 서울과 다른 곳 사이에 깊은 크레바스가 놓여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는 글로벌화가 진전된 198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에 연결된 수도권 지역에 성장 제조업의 구상기능이 집중되었다. 비수도권에서는 생산네트워크에서 조립의 실행기능을 맡은 산업도시가 성장의 일부 성과를 배분받았다. 그러나 지방 산업도시에서 발생한 생산소득의 상당 부분은 다시 서울로 되돌아갔다. 그 결과 전국 평균 이상의 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지역은 서울, 울산, 충남뿐이다.
그런데 세계도시로의 집중,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상황이 또 급변하고 있다. 세계도시들은 지능산업을 끌어들이고 있고 기존 산업도시는 쇠퇴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이 집중되는 농촌지역과 중소도시는 ‘지방 소멸’에 직면해 있다. 현재 추세에 2020~2021년의 세계경제 침체가 결합을 하면, 지역 균열은 더 심화될 것이다. 충청, 강원권은 수도권에 결합하려 할 것이나, 영남권과 호남권은 파국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영호남 주민과 정치인들은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 각자도생은 공멸이다. 중앙정부와 협력해 시·군·구, 광역시·도를 뛰어넘는 광역연합체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그 안에 능력과 매력을 갖춘 세계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이는 절박한 생존의 방책이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9년 10월 1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012100005&code=990100#csidx4e4575ee4eac974801619e79191dc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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