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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수] 연결과 거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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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3-23 10:57 조회13,3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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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한 시간을 비켜 일산역에서 출발하는 경의중앙선 열차를 출근길에 이용한 지 꽤 됐다. 같은 시각, 같은 칸에 오르다 보니 낯이 익은 이들도 생겼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뒤흔들면서 플랫폼이 많이 한적해졌다.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는지 보이지 않는 얼굴도 있다. 하차하는 홍대역은 언제나 색색의 캐리어로 북적이는 곳인데 요즘은 휑한 느낌마저 든다. 많은 일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언제나 당연하게 진행되고, 거기 있으리라 여겼던 일상의 테두리와 풍경이 어느 순간 멈추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당혹스럽게 확인하는 나날이다. 감염의 직접적인 피해자분들이나 그들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는 이런 감상적인 당혹감 같은 게 스며들 여지도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 사태의 관리와 방역에 매진하고 있는 일선의 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무슨 말을 얹기가 힘들다. 사태의 영향을 혹독하게 겪고 있는 업종도 많고, 여파는 여력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나 시간제·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미치면서 최소한의 생업 공간마저 위협당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이상으로 사태를 어둡게 보며 불안을 지피는 일을 경계하는 한편으로, 사회 전반의 토대가 흔들리지 않게 지혜와 마음을 보탤 때라는 걸 절감한다.

 

나는 생업으로 조그만 출판사를 꾸리고 있는데 준비해오던 책의 출간을 늦추어야 할지 고민이 없지는 않지만, 한 권 한 권 책을 만들고 세상에 내보내는 것도 지금의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가들이야 원래 자신의 성과를 알리는 데 서툰 이들이지만, 이즈음은 책을 내놓고도 좀더 조용한 것 같다. 최근에 나온 강영숙의 장편소설 <부림지구 벙커X>(창비)는 지진으로 한순간에 붕괴되어버린 도시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누군가 재난을 대비해 지하에 묻어둔 낡은 버스 몇 대가 생존자들의 피난처가 된다는 상상력이 이채롭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그 지하의 이상한 벙커는 일시적 피난처가 아니라 이들이 지켜내야 할 지속의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거기에도 일상이 흐른다. 소설의 제사(題詞)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필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월든>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고, ‘작가의 말’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갖고 싶다는 게 욕심일까. 어쨌든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소설을 쓰느라 주변의 고통을 몰랐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는 말로 끝난다. 소설의 앞뒤에 놓인 이 두 언어들 사이에 재난의 시간을 상시적 감각으로 소설화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절실한 문제의식과 함께, ‘쓴다’는 일이 그 ‘거리’(距離)로 인해 제기하는 물리치기 힘든 윤리적 곤혹도 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감염병의 존재는 바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상한 방식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임시적이고 실용적으로 마련된 방편의 언어이지만, 실제로도 우리의 ‘연결’이 늘 일정한 ‘거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되짚어주기도 한다. 이때 ‘거리’는 우리 각자의 실존적이고 물리적인 한계일 수 있으며, 그 한계의 겸허한 수용이 오히려 적절한 공동체 의식을 일상의 감각이나 태도로 만들 수도 있다. 불안을 지피고 전체를 전유하는 비장한 언어에서 우리는 종종 특정한 이해가 접혀 있는 위선의 가면을 감지한다.

 

지난주 하루는 영화관을 찾았다. 왕빙 감독의 <철서구>(2003)는 중국 선양의 공업단지 ‘철서구’(鐵西區)의 쇠락하는 2년여의 시간을 담은 551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다. 일본 점령기에 군수산업 기지로 건설된 뒤, ‘신중국’ 수립 이후 발전을 거듭해 한때는 100만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기도 했던 철서구의 국영기업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게 된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감독의 카메라는 하염없이 따라간다. 고된 작업 뒤 몸을 씻기 위해 시커먼 먼지로 뒤덮인 벌거벗은 몸을 내보일 때든, 강제 철거로 전기도 끊긴 쓰러져가는 집에서 촛불 아래 끼니를 챙길 때든, 공단 내 화물량이 줄어들면서 한가해진 열차 기관실에서 카드놀이를 할 때든 이들과 카메라 사이에는 무심하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친밀한 거리가 있는 듯했고, 그 기적 같고 끈질긴 영화의 노동 덕분에 나는 평생 연결될 일 없어 보이는 중국의 노동자들과 만나고 있었다. 석탄을 훔치기도 하며 두 아들과 함께 철로 근처에서 살아가는 한 사내는 말한다. “평생을 살기는 정말 힘든 일이야.” 영화가 끝나니 10시가 넘었고, 서른명 남짓한 관객들은 마스크를 챙기며 조용히 일어서고 있었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20년 3월17일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329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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