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고등교육의 혁신, 연구자 지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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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5-13 10:44 조회29,6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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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선생이 훌륭한 학생을 길러낸다. 대학원 학생이 뛰어난 학자이자 선생으로 성장해야 우수하고 경쟁력 있는 고등교육기관이 생긴다. 고등교육 혁신에서 연구자 지원책이 필수적인 이유이다.
교육부는 고등교육 혁신방안을 6월 안에 발표할 계획이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첫째, 학문사회가 하나의 집단으로서 새로운 기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강사법 논란에서 드러나듯, 대학이 망가지고 있지만 전임교수가 비정규교수와 알차게 연대하고 협력하는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 과거의 정책 실패에 관한 뼈저린 자기비판이 부족한 교육부가 주도하는 한, 학문사회가 그나마 지닌 혁신 의지와 역량도 죽이기 십상이다. 셋째, 상당한 재정투입이 따라와야 하지만, 현재 정부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문사회과학은 공부하려는 이가 점점 줄고 이미 배출된 박사들은 자리가 없어 말 그대로 붕괴 직전이다. 자연과학 등 이공계도 어렵기는 매일반이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공계 박사과정생은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통해 등록금 면제와 생활장학금 혜택을 받지만, 인문사회계는 대개 자기 돈을 내고 공부한다. 장차 전임교수가 될 전망이 불투명한 현실에서 이처럼 어려운 환경은 젊은이가 자신있게 공부길을 택하는 것을 막는다.
인문사회과학을 택한 박사 신입생에게 등록금 면제와 최소 5년간 월 150만원의 생활장학금을 줘야 엄정한 학사관리 속에 학생을 신명나게 키울 수 있다. 자연스럽게 탁월한 신진 학자가 우수한 학위논문과 함께 배출될 것이다. 물론 전국 인문사회계 대학원 정원 조정과 네트워크화 등의 개혁이 함께 가야 한다.
대학원 혁신을 전제로 매년 박사과정생 1만명에게 생활장학금을 줄 때 재정 부담은 얼마일까? 등록금을 연 800만원으로 잡고 1인당 2600만원, 연 2600억원이 든다. 현지조사나 해외연수 등 논문준비와 집필을 지원할 재정으로 400억원을 더한다면 연 3000억원이 필요하다.
당장 과도한 부담이라는 반발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박사를 따는 것이 외국 유학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수한 한국 학생이 외국 대학에 가면 생활장학금까지 받고 공부한다. 언제까지 고급의 인재 양성을 해외 대학에 의존하는 식민지적 학문 풍토를 방치할 셈인가. 압도적으로 미국 위주인 유학에서 돌아와 교수 자리를 잡는 경로는 진지한 학문의 길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을 위한 투자의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학자는 됐고, 교수가 꿈!”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캠퍼스에서 오갈까.(유학 무용론으로 오해 말기 바란다. 유학이나 해외연수가 필수인 분야도 많고,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한 한국에서 여성에게는 아직 국내 수학보다 유학이 현명한 선택이기 쉽다.)
어렵게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생활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전임박사들을 돌아보자. 전국의 인문사회계 미취업 박사는 3만명을 훌쩍 넘지만, 한국연구재단의 비전임박사 대상 각종 사업 지원자는 지난 3년간 놀랍게도 평균 4300여명에 불과하다. 이는 비전임 연구인력 전체의 15% 미만이며, 이들의 실정이 사업 응모에 필요한 연구실적을 채우지 못할 만큼 열악하다는 방증이다.(물론 부실한 국내 대학원에서 허술하게 배출되는 박사도 많다.)
지난 4월 교육부는 비전임박사 대책으로 ‘인문사회 학술연구교수’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연 3000명을 지원하겠다는 비교적 진전된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계획을 단일 유형으로 통합하고 지원자를 1000명만 늘려 연 4000명으로 한다면, 현행의 지원자격을 충족하는 박사를 거의 모두 선발하는 획기적인 강점이 있다. 수혜자에게 직접 혜택이 가니 강사법 시행에 따른 대학 지원금 증액보다 효과적이며, 부실대학 지원 시비와도 무관하다. 이들의 소속도 다변화하여 대학에서 연구하며 강의를 맡거나 각종 연구기관에서 원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고,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의 실험에 뛰어들 수도 있다. 4000명의 학술연구교수에게 1인당 연 4000만원의 급여를 주되, 지원 인원을 매년 600명씩 늘려 10년 후 최종적으로 1만명을 지원한다면 연 4000억원이 필요하다.(늘리기만 하면 600명보다 적어도 좋다.)
인문사회 분야의 박사생활장학금 도입과 비전임박사를 위한 학술연구교수라는 새 직군의 정착에 드는 재정은 당장은 2000억원 미만이며, 점차 늘어나 10년 후 최종적으로 연 7000억원(+물가 인상분) 이하가 든다. 물론 큰돈이며, 투자의 타당성 확보를 위해 준비하고 개혁할 일도 많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재정을 감당치 못할 만큼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취약한가? 이 돈이 아까울 만큼 인문사회 분야 학문연구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가?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경향신문 2019년 5월 9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92144025&code=990308#csidx2d7bb95896c17efa84b449077f84e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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