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한·일 반도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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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7-11 13:09 조회23,38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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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사이에 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다.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여기에 여론은 다시 나누어지고 있다. 한편은 정부 책임과 무대책에 대해 비판한다. 또 한편은 일본을 규탄하고 정부 비판을 다시 비판한다. 나는 중대한 체제변동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고 본다. 이번 분쟁은 세계체제-분단체제-국내체제와 연관된 ‘새로운 시대’의 징후다. 바닥 분위기와 거시적 시야를 함께 짚어보자.
첫째, 지인들이 들려준 업계 현장의 분위기는 꽤 심각하다. 업계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고 있다 한다. 일본과 거래하는 이들은 작년 말부터 일본 정부 차원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의 조치는 한국경제의 핵심 경쟁력을 이루는 반도체를 공격한 것이다. 반도체 공정은 웨이퍼에서 회로를 만드는 전(前)공정부터 패키징하는 후(後)공정까지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또 세부 공정마다 복잡한 공급체인이 형성되어 있다. 이번 조치는 공정 초기의 포토공정과 전(前)공정의 중요요소인 식각(에칭)공정에 사용되는 소재 공급을 규제한 것이다.
규제 대상은 단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미 언론에서는 전략물자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화이트국가’ 명단에서 한국이 제외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3종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가 국지전이라면, ‘화이트국가’ 명단 제외는 전면전으로의 확전을 의미한다. 어느 공정단계에서든 로봇·히터·센서 등 생산장비에 사용되는 부품 공급까지 막히면, 공정의 체계적 연속성이 무너지게 된다. 반도체 생태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국산화율을 높이자는 주장은 당장 현실성이 없고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 거래를 규제하면 전방산업 쪽의 일본과 후방산업 쪽의 한국이 동시에 피해를 입겠지만, 피해의 절대적·상대적 크기는 한국 쪽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지금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은 소재 및 장비 재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선, 애플·아마존 등 수출선을 분주히 점검하고 있을 것이다.
중소·중견 기업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기술과 직원을 지킬 수 있을까 두려워한다. 회사를 지키지 못하면 외국인 기업에 의탁해야 하는가 고민하면서 불면의 밤을 지내는 이들도 있다.
둘째, 반도체 분쟁은 경제분야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군사·경제체제 변동의 여러 고리에 함께 묶여 있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생산체제는 전쟁체제·무역체제와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었다. 길게 보면 세 차례의 역사적 계기를 떠올릴 수 있다. 첫 번째는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형성된 일본·중국·한국의 상이한 경로다. 두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쳐 만들어진 동아시아 모델이다. 세 번째는 전자산업, 특히 반도체와 연결성에 기초한 군산 복합과 지정학적 경쟁 체제의 등장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유일한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여기에는 구소련의 붕괴라는 계기도 있지만, 걸프전을 전후로 급진전된 디지털혁명과 군사기술의 결합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전통적 전쟁무기도 고도화되었지만, 정밀무기와 네트워크 중심전이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전쟁과 기술·경제는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특히 반도체 칩은 산업과 무기의 기본 소재다. 칩은 컴퓨터는 물론 자동차와 전투기의 두뇌이며, 미국 기술·군사체제의 핵심적 역할을 맡는다. 반도체산업은 세계적 차원에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미국이 디자인 설계에서 첨단기술 우위를 지닌다. 한국과 대만 대기업은 제조 공정에 특화되어 있다.
미·중 무역·기술전쟁 이면에는 반도체 생태계의 변동이 작동하고 있다. 중국은 공급체인 중 하위기술 파트너로 참여했다가 디자인·제조·조립 등 전 공정에서 첨단기술 확보를 시도했다. 이에 미국은 중국으로의 반도체 기술 확산을 봉쇄하고 미국·한국·대만 등의 제조 동맹을 강화하는 중이다. 일본은 한국의 역할을 견제하고 분업체계에 개입할 능력이 있다.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면 한국은 미국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중관계에서의 긴장은 한·미, 북·미관계에도 변화의 힘을 낳는다. 한·일관계 악화는 미·일, 북·미관계의 변동과도 관련이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국내 정치세력의 정략·독단·불성실 탓도 있다. 동아시아 경제·군사체제 변동에서 일본의 비중은 작지 않다. 반도체와 관련된 산업과 민생, 체제 전체의 위기적 성격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
경향신문. 2019년 7월 9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092103015&code=990100#csidxebb2c621d52e13a8868bc9b780c7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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