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내년 4월16일을 맞이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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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10-25 09:53 조회19,9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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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 맞이한 세월호 2000일은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소망을 지닌 모든 이들에게 퍽 착잡한 날이었다.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시국은 어지럽고, 하나로 뭉쳐 싸우던 이들 사이에도 인식과 입장의 차이가 없지 않다. 10월3일 광화문의 대규모 보수집회 참가자 중 일부가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야유와 함께 철거를 주장했다지만, 그 앞을 지나치며 속마음으로 유족들의 뜻에 공감한 참가자도 많았을 것이다.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일은 겉치레이고 자신의 이익 도모가 먼저인 이들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월호 유족들이 바라는 바는 오로지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 목표는 국가가 마땅히 떠맡아야 할 책무이며, 국민 누구라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우리 곁에서 너무도 자주 벌어지는 산업재해, 안전사고까지 생각한다면 우리가 모두 세월호 희생자요, 유족이라고 말해도 좋다. 진상규명은 특정한 사고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참사와 관련된 주목할 사건 중에 두 가지만 되돌아보자.
첫째, 2017년 7월17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세월호’라고 적힌 A4 용지 박스 2개의 문건이 파쇄된 사실이 몇 달 전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이 시기는 청와대 안에서 박근혜 정권의 비리·불법과 연관된 문건이 잇따라 발견되던 때였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되어 아직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저지른 혐의가 큰 엄중한 사건이었지만, 청와대나 이 사실을 인지한 검찰도 제대로 조사하거나 수사하지 못하고 말았다. 보궐선거로 집권하여 대통령직인수위도 없이 내각 구성조차 어려움을 겪던 당시의 여건 탓으로만 돌리고 넘어갈 문제인지 의문이다.
둘째, 지난 5월27일 청와대의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와 전면 재수사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에 대한 실망스러운 답변이다. 청와대는 활동 중인 2기 특조위(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밝혔다. 애초에 수사권·기소권이 없는 특조위로는 진상규명이 불가능함을 뼈저리게 겪은 끝에 나온 국민청원이었고, 같은 내용의 국회 결의안도 5월7일 발의된 터였다. 그런 국민청원에 대한 이러한 답변은 결국 특별수사를 다시 맡아 기존의 부실한 수사를 되풀이할 검찰이라는 장애물을 다시 확인하는 듯하여 안타까웠다.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촛불의 뜻에 부합하는 과제라 하더라도 논란과 반발을 초래하여 정치적 부담이 생길 기미만 보이면 하염없이 미루는 것이다. 고교체제 개편도 어정쩡하게 대처하다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었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에서도 과감함이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선거의 표를 의식한 것이겠지만, 이래서는 내년 총선도 불투명하며 2022년 대선도 이기기 어렵다.
참사의 진상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6800t급의 큰 정기여객선이 채 2시간도 안되어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을까? 왜 해경의 현장 책임자와 지휘본부의 책임자들은 세월호와 해경, 각급 상황실과 구조세력 간의 긴밀한 통신을 유지하지 못하며 정확한 상황파악과 신속한 구조에 실패했을까? 세월호와 청해진해운이 국가정보원과 연루된 흔적들은 또 어떻게 해명할까? 승객 전원 구조라는 오보는 어떻게 나왔을까? 사고 당일 한밤중에 배를 빌려 가족들이 현장에 가 보니 잔잔한 바다 위에서 해경은 아무런 구조 활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왜 구조작업은 즉시 시작되지 못했을까? 사상 최대의 구조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받아쓰기식 허위 보도가 횡행한 경위는 무엇일까?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모른다. 아니,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잠수함 충돌설, 고의 침몰설 등이 사회 일각에서 유포된 배경이다.
내년 세월호 참사 6주기는 마침 4월15일로 예정된 21대 총선 다음날이다. 국회에서 여야가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라 있는 선거법 개정안 등 개혁 법안들을 더 잘 다듬어 통과시키는 동시에, 정부와 여당은 총선 때까지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킬 정치적 성과를 거둘 의지와 과단성을 발휘하기를 빈다.
내년 4월16일 새벽을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총선 결과를 보며 맞이하고 싶다. 이후에도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의 길은 험난하겠지만 좌초되지는 않을 것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9년 10월10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102034035&code=990308#csidxa1d5882a7ee8a0fb7be7503f08f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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