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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명절, 변해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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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2-28 12:29 조회32,8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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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조짐이 있기는 했지만, 올해 설을 전후로 해서는 유독 명절파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사실 명절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여행지에서 지내는 이야기 정도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연휴에도 쉴 수 없는 직장 때문에(아니 덕분에) 길 밀리는 귀향길이 버거워서 은근슬쩍 명절을 흐지부지 넘겨온 집들은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더 달라졌다. 이번 설을 보내며 새롭게 대두된 것이 있다면 ‘올해부터는 명절노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여성들의 파업선언이 공개적으로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편승해 3대 독자가 명절파업을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차례상을 마련하는 기사를 올렸다가 조작 시비로 필화에 휘말린 주요 일간지까지 있었을 정도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폭력에 대한 증언과 고발을 비롯해 일상을 조금 더 성평등한 세상으로 바꾸고자 하는 요즘의 시대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명절파업을 선언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명절을 쇠지 않은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생을 명절마다 고생한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한 사람, 규격에 맞춰 차리는 차례상을 포기한 대신 가족들이 좋아하고 돌아가신 분에게도 한번 맛보여드리고 싶은 새로운 음식을 마련해서 나눠먹은 사람들, 홀로 명절을 보낼 이웃들을 챙기면서 따뜻한 자리를 마련한 사람들, 조용히 홀로 시간을 가진 사람들…. 한해를 여는 첫날에 대한 감흥이 없을 수 없기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고자 애쓴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명절노동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평소에 못하던 효도를 하거나 가족을 챙기고 소중한 음식을 장만해서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한, 그런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사실 명절을 둘러싼 분란 속에서 문제를 만드는 것은 명절 자체가 아니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심지어 비용까지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막말이 덕담이란 이름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게 문제다. 명절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오래전에 사라진 껍데기만 남는 자리가 돼버린다면 결국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명절에 파업을 선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통의 이름이든 가족의 이름이든 인간에 대한 예의는 사라지고 강요만 남은 명절도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의례가 사라진 자리도 허무하다. 매일같이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거나 흩어져 살아가는 친척들끼리 서로를 챙기기도 어렵기에, 어느 시절 어느 사회든 마음을 가다듬고 더 큰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기 위해 의례를 차리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니 명절파업에 마음 불편한 분들의 우려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지킬 것을 지키려면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 시대 명절의 현실이다. 다음 명절이 오기 전에 명절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눠볼 일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9년 2월20일

원문보기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07522/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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