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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여성의 권리는 모든 인간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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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8-05 16:27 조회29,0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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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탈레반의 총에 맞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어. 하지만 네가 아이들 교육권을 요구한 것이 탈레반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지 아니? 따라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탈레반이 네게 벌을 내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이게 사과인가 변명인가 궤변인가?


최근 파키스탄의 한 남자가 쓴 편지가 화제다. 이름은 아드난 라시드, 직업은 탈레반 반군 지도자. “지극히 자비롭고 존귀하신 알라의 이름으로 아드난 라시드가 말랄라 유사프자이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공개서한에서 그는 지난해 탈레반에게 총격을 당해 죽을 뻔했던 말랄라에게 약간의 동정을 표했다. 알다시피 말랄라는 여자아이도 학교 갈 권리가 있다는 캠페인을 벌이다 탈레반의 미움을 사 생사의 기로에 놓였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 당차고 조숙한 소녀는 얼마 전 열여섯살 생일을 맞아 유엔에서 반기문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전세계 모든 아이들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연설을 했다. 라시드는 탈레반이 말랄라를 죽이려 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고, 자기가 말랄라에게 신변을 조심하라고 미리 경고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투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곧이어 다음과 같은 해괴한 문장이 이어진다. “말랄라, 너와 유엔에서는 마치 탈레반이 아이들 교육을 반대하기 때문에 너를 쐈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지. 하지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교육이 아냐. 너의 선전활동, 외부의 사주를 받아 네 혀가 내뱉었던 그 짓거리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었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거 잘 알지? 펜은 칼보다 더 날카로워. 칼에 찔린 상처는 아물 수 있지만 펜에 찔린 상처는 절대 낫지 않아. 그러니 전쟁에선 칼보다 펜이 훨씬 더 해악을 끼치는 거란다.” 라시드의 편지를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네가 탈레반의 총에 맞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어. 하지만 네가 아이들 교육권을 요구한 것이 탈레반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지 아니? 따라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탈레반이 네게 벌을 내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이게 사과인가 변명인가 궤변인가? 산간오지의 십대 소녀가 학교 다닐 권리를 주장한 것이 그 아이를 죽여도 될 만큼, 그렇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것일까? 도대체 인간 정신의 어떤 회로를 통해 이런 생각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탈레반은 여아들의 교육을 특히 싫어했다고 하니 이 사건에서 젠더 차원의 분석을 빠뜨릴 수 없다. 또한 젠더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인권 문제에서 사활적인 마디가 되어 있다. 여성 인권 침해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키메라처럼 변하며 나타나고 있는, 역사적이면서 현재진행형인 거대한 억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라시드의 주장에 나타나는 철저하게 뒤틀린 당착적 사유와 그것의 재현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같은 문제로만 환원시킬 수 없는, 지배-종속의 권력구조 속에 내장된 배배 꼬인 어떤 인식에 기반한 공통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영성가였던 토머스 머튼이 전쟁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품었던 복합적인 감정을 꼬집으면서 들었던 사례가 있다. 중세 유럽의 기사였던 ‘경건자’ 로베르투스는 함부로 전쟁을 벌이지 않고 엄격한 조건하에서만 싸우겠노라는 서약문을 남겼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나는 홀로 여행하는 귀부인이나 그 여종, 또는 과부나 수녀를 그들이 내게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 한 괴롭히지 않겠노라.” 로베르투스의 서약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남을 해치는 일은 나쁘다. 남이 나를 먼저 해치기 전에 내가 남을 먼저 해쳐서는 안 된다. 고로 여자가 기사를 먼저 해치기 전에 기사가 그녀를 먼저 해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여자가 기사를 먼저 해친다면 기사가 그녀를 해치는 것이 정당하다.” 흠잡을 데 없는 형식논리다. 그러나 홀몸으로 먼 길을 가는 부인이나 과부나 수녀가 칼 찬 무사에게 도저히 묵과할 수 없을 만큼 시비를 걸어와 남자가 눈물을 머금고 그 여자를 해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게 현실 속에서 도대체 가당한 이야기인가? 탈레반 사령관 라시드와 기사 로베르투스의 두뇌 회로가 천년의 세월, 그리고 전혀 상이한 문화권을 뛰어넘어 어찌 이다지도 판박이처럼 닮았단 말인가! 여성을 괴롭히는 논리와 반평화적 사고방식이 내재적으로 연결된 것도 소름끼칠 만큼 닮았다. 우리 사회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말랄라는 유엔 연설에서 여자아이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아이들’의 교육권을 역설한다. 말랄라의 성숙한 생각과 두 남자의 ‘완벽한 형식논리’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


에밀리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중 익명의 편지가 한 통 배달되었다. 에밀리는 죽어도 싼 여자이지만 살아서 평생 고통을 겪기 바란다고 악담을 퍼부었고, 투표권을 요구하는 여자는 정신병원에 가둬야 한다고 했다. 편지 발신인의 정신구조가 라시드나 로베르투스의 그것과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을까.


지난 6월8일은 세계 여성 인권운동사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영국의 여성 투표권 운동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의 서거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에밀리는 여성운동 안에서도 전투적이기로 유명했다. 행진을 조직하고 우편함에 불을 지르고 남성 정치인 집에 돌을 던지는 등 과감한 직접행동을 앞장서 실천했다. 투옥된 뒤 단식투쟁을 벌여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형무소 쪽이 강제급식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콧구멍으로 튜브를 넣어 강제로 급식을 시행하는 것은 그 후 전세계적으로 권력자들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수인들, 최근엔 관타나모에 수감된 알카에다 용의자들도 강제급식을 당했다. 에밀리는 1913년 6월4일 영국 동남부에 있는 서리의 엡섬다운스에서 열리는 엡섬 더비(현지에선 ‘다아비’라고 발음) 경마대회장에 나타난다. 엡섬 더비는 지금도 매년 6월 최고의 경주마들이 출전하는 유명한 경기대회다. 국왕의 애마를 비롯한 수십마리 경주마들이 2423미터를 쉬지 않고 뛰어 승패를 가리는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그날 경기 도중 에밀리가 관중석에서 갑자기 트랙으로 뛰어들었고 조지 5세의 경주마인 앤머의 발굽에 차여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고 당시 에밀리는 코트 안에 여성사회정치연맹(WSPU) 기를 두르고 있었고, 손에도 깃발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에밀리가 연맹의 깃발을 앤머에게 달아 주려 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에밀리는 나흘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망했다. 공식 사인은 두개골 골절이었다. 6월14일 수천명이 참석한 장례식장에선 에밀리가 들고 있던 삼색기가 나부꼈다. 그 후 존엄의 보라색, 순수의 흰색, 희망의 녹색은 전세계 여성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에밀리의 삼색기는 1958년 올더마스턴에서 벌어진 반핵운동 행진에서도 선두를 지켰다. 에밀리가 목숨을 걸고 추구했던 여성 투표권은 오늘의 눈으로는 너무나 상식적인 요구지만 당시 남성들에겐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에밀리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중 익명의 편지가 한 통 배달되었다. 궤변으로 가득 찬 증오의 편지였다. 에밀리는 죽어도 싼 여자이지만 살아서 평생 고통을 겪기 바란다고 악담을 퍼부었고, 투표권을 요구하는 여자는 정신병원에 가둬야 한다고 했다. 편지 발신인의 정신구조가 라시드나 로베르투스의 그것과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을까.


여성 인권운동은 인권 발전사에서 이론과 실제 양면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선 인권의 소위 ‘보편성’ 개념을 전혀 다르게 상상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인권은 세상의 모든 인권 침해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약자들에게 비슷한 논리구조 속에서 가해진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약자 집단들에게 완전한 인권을 인정해 주지 않으려는 교묘한 회피와 훼방, 곧 억압논리의 보편성이 여성 인권운동을 통해 만천하에 폭로된 것이다. 더 나아가, 억압받는 모든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상태를 꿈꾸고, 그것을 찾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도 인권은 보편적이다. 다시 말해 억압의 논리도 보편적이고 저항의 논리도 보편적이다.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수인의 처우, 장애인 인권, 반핵운동, 소수자 인권과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과거의 인권운동이 지식인이나 사상가들이 중심이 된 엘리트 주도형 인권운동이었다면, 여성 인권운동 이후의 인권운동은 참된 의미에서 민중 주도형 인권운동이 되었다. 더 나아가, 여성 인권운동은 어떤 권리의 법적·계약적 자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권리의 실질적 구현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예를 들어, 여성 투표권이 확보되었다고 해서 젠더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었는가? 투표권 자격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채우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법적 권리 자격의 확보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권리 실현 쪽으로 모든 인권운동의 초점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성 인권운동을 계기로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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