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빈곤’한 복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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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10-23 16:51 조회35,3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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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복지 후진국이지만 지원금에서는 단연 앞선 나라다. 많은 이름의 지원금이 다양한 분야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이 지원금이 개인에게 직접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도 대부분 업체나 단체 같은 곳을 통해서 준다.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종종 매우 높다. 최근 전국에서 유행하는 미니 태양광도 지원금 비중이 대단히 높고 업체를 통해서만 지급된다. 서울시에서는 100만원이 넘는 500W 미니 태양광 비용을 70% 이상 지원해주는데, 지정 업체를 통해서만 설치해야 하고 지원금은 이 업체에 바로 지급된다. 500만원짜리 3㎾ 주택용 태양광 시설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업체에 주는 지원금이 설치비용의 절반이 넘는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개인에게 직접 주지 않고 기업체에 주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그 사업에 쓰지 않고 유용하거나 싸구려 제품을 설치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물론 업체도 크게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업체를 선호하는 이유는 개인보다는 다루기가 훨씬 쉽고 짧은 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관료들이 다루기 어려운 개인의 주체적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그들이 주무르기 쉬운 기업체의 영업능력에 의존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과만을 중시하여 업체에 의존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국민 개개인이 수동적 존재로 남게 돼 지원금이 사라지면 사업이 더는 진행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지원이 없더라도 사업이 지속되려면 에너지 전환을 우리 사회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시민이 늘어나고 이들 시민이 주체적 존재로서 태양광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시민이 지속적으로 늘어남과 함께 이에 호응하는 업체들이 값싸게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선순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업체들이 더 많은 수동적 개인을 움직이기 위해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하고, 정부 관료들은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지원금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2030년 재생에너지 20% 목표 달성을 위해 건설되고 있는 태양광 발전소들이 곳곳에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이유도 정부 관료들이 시민들을 신뢰하지 않고 수동적인 존재로 다루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반발이 그다지 크지 않으니 20%까지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이 계속 수동적인 존재로만 취급되면 20%를 넘어서 30~40%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요즈음 큰 싸움으로 번진 사립유치원 비리 논쟁도 시민을 믿지 못하는 정부 관료들의 지원금 집행 관행, 더 크게는 복지철학에 기인한 바가 크다. 사립유치원 원아에게는 매달 30만원 가까운 지원금이 지급된다. 그런데 이 지원금은 아이들 가정에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에 직접 지급된다. 사정이 있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는 가정은 10만원 정도의 양육수당만 받는다. (후략)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경향신문, 2018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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