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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분단체제, 양국체제, 한반도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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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3-21 13:51 조회31,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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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긴장 국면으로 들어섰다. 빈손으로 귀국한 북측은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회담 직후 북측의 기자회견, 최근의 협상 중단 가능성 언급은 난감한 북측의 상황을 보여준다. 협상 타결을 예상하고 ‘신(新)한반도체제’를 공언한 한국 정부도 곤경에 처했다.

 

노딜 후폭풍은 상당 시간 이어질 것이다. 북이나 남이나 상황 인식의 틀을 재점검해야 할 시기다. 때마침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사이에 인식 틀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한반도 정세의 핵심을 다시 짚어보자.

 

논쟁은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라는 단행본 출간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을 중심에 놓고 토론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여기에 대해 경희대 김상준 교수는 2018년 말~2019년 초에 몇 개의 논문을 통해 분단체제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이어 서울대 김명환 교수가 ‘녹색평론’ 2019년 3~4월호에서 분단체제론의 입장에서 해명과 반론을 전개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면 논쟁은 쟁점을 분명히 해주는 효과가 있다. 이번 논쟁에서 부각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첫째,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이 공유하는 대목이 많다는 점이다. 한반도 문제는 체제 차원의 문제다. 따라서 체제전환의 과제를 제기한다. 체제전환의 과제에는 평화공존, 국가연합, 평화통일의 지향이 포함된다. 그리고 통일의 과정에는 중간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북 간 교류에는 정부 간 교류뿐만 아니라 민간교류가 큰 의미를 지니며, 근대적 국가체제의 존재적·인식적 기반의 변화가 동행한다는 것도 공통점에 해당한다. 

 

둘째, 평화통일로 가는 중간단계가 남북연합인가 양국체제인가 하는 차이가 핵심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백낙청 교수와 김명환 교수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로로 남북연합 발상을 제기하였다. 이 흐름이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2000년 6·15선언, 2007년 10·4선언, 2018년 판문점선언으로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상준 교수는 양국체제 형성의 흐름을 중시한다. 그는 이제 양국체제로의 대세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양국체제가 성립하기 이전의 남북연합은 양국 수교 이전의 사전 접촉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파악한다.  

 

나는 분단체제론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 ‘한반도체제’ 또는 ‘한반도경제’라는 개념을 적극 사용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렇게 하면 분단체제를 구성하는 요소와 분단체제로부터 벗어나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좀 더 분명히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준 교수는 분단체제론과는 구분되는 분단체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체제 성립 이후에도 민주화가 역진하는 ‘마의 순환고리’가 작동하고 있고 이는 분단체제를 통해 작동한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분단체제는 미·소 냉전과 남북 적대라는 두 개의 동력(선행조건)으로 작동한다.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남북 적대가 존속하고 있으므로, 남북 적대를 해소해야 하고, 냉전의 여파인 북·미 적대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대 해소의 현실적 방법은 수교이고, 남북수교와 북·미수교가 이루어지면 분단체제는 해소되고 양국체제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나는 분단체제론의 핵심 개념을 더 명료하게 보완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상준 교수도 지적하는 것처럼,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분단체제론을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반도체제’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자는 것이다. 한반도체제는 세계체제-분단체제-국가체제의 세 개 층위와 정치-군사-경제의 세 개 부문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체제다. 체제의 이행은 각 층위와 각 영역이 서로 연동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는 동아시아·태평양 네트워크, 남북 네트워크, 네트워크 정치·경제의 확대 과정을 포함한다.  

 

남북 모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낙관했다가 낙심하고 있다. 삼층·삼부문이 맞물린 한반도체제의 구조를 감안하면, 비핵화와 제재 완화, 남북 및 북·미 수교가 단시간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러 방향에서 네트워크 진전을 누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미국의 국내적 분열과 미·중 경쟁의 구도는 체제적 조건이다. 북·중 교역을 촉진하는 대북 제재 완화에는 높은 장벽이 있다. 북한 당국이 연락사무소 개설 대신 제재 완화를 들고나온 것이 적절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 정부도 한반도체제 이행의 차원에서 국제 협조와 국내 협치 기반 조성을 함께 추진하는 전략적 관점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

 

경향신문 2019년 3월 19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192040015&code=990100#csidxcd6d076ae273efd8fda3722a9583556 onebyone.gif?action_id=cd6d076ae273efd8fda3722a958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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