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석] 미니멀리스트 이승은의 실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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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5-03 09:11 조회29,7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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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가구나 물건들로 살림을 채우기보다 가능한 한 비우고 생략하는 데 집중하는 생활양식을 일컬어 흔히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고 한다. 패션이나 인테리어 산업에서 이런 흐름을 선도해왔고 요즘은 누구나 쓰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이 말은 본래 세부를 단순화하여 대상의 본질만을 남겨놓으려는 일종의 미학적 태도나 예술이념을 가리키는 추상도 높은 개념이었다. 자연히 시각예술이나 건축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드물게는 음악에도 채용되곤 해왔다. 반면 문학에서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경제를 추구한다는 차원에서 시는 근원적으로 ‘미니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의미를 함축한다는 뜻이어서 ‘의미의 경제’를 함께 내포하는 미니멀리즘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소설에서라면 어떨까.
아마도 이승은의 첫 소설집 『오늘 밤에 어울리는』을 읽고 일체의 수사와 구구한 정황 설명을 배제하려는 하드보일드 문체의 소설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다. 주관적 감상의 개입 여지를 차단하는 듯한 장식 없는 문장들이 우선 그런 연상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 작가가 구사하는 최소화된 규모의 이야기들에는 특별한 줄거리 또는 플롯이랄 게 거의 잡히지 않거나 있더라도 희미하다. 마치 무슨 일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암시나 조짐이 소름이 일듯 연쇄반응을 일으키지만 끝내 그 인과가 명료한 논리로 포착되진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승은의 소설이 의미의 완성을 미루거나 생략하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그의 데뷔 단편인 ‘소파’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서윤과 준우 부부의 아파트가 배경이다. 도둑이 든 것 같아 무섭다며 이웃집 수경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돌아가는 간단한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이 처해있는 심리적 곤경들이 간간이 제시된 정보들에 의해 짐작되지만 독자들은 수경의 집에 진짜 도둑이 들었는지 준우가 수경 대신 휴대폰을 가지러 가 그 집 선반에서 꺼내온 “무언가”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왜 그것을 삼키는지를 추측 이상으로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오늘 밤에 어울리는』의 수록작들은 통상의 하드보일드 소설을 비켜난다. 요컨대 파국의 전조는 있지만 파국 자체는 생략되거나 적어도 그 인과관계를 비밀에 부쳐둠으로써 서사보다는 장면 자체의 인상을, 의미보다는 암시나 조짐, 기분이나 분위기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등장인물과 한정된 시공간의 실내극을 펼치되 그것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마저도 최소화하거나 생략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승은은 어쩌면 한국문학에 등장한 최초의 미니멀리스트 소설가인지도 모른다.
이 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제의식의 차원에서라면 그것은 소설집의 표제작인 ‘오늘밤에 어울리는’의 마지막 문장들이 설명을 대신해줄 것 같다. “불행의 본보기가 되는 조연들이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결국 헤쳐나간다.” ‘조연’들의 삶은 주인공에 비해 늘 최소화되어있기 마련이고 작가 이승은의 관심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다른 한편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문맥에서라면 그것은 고밀도의 메트로폴리스 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나날이 비좁아지기만 하는 이곳에서는 물질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도 누구든 왜소화의 압력에 상시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승은의 미니멀리즘은 그곳을 정확히 향한다.
강경석 문학평론가
경향신문 2019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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