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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아니오'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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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5-24 14:35 조회28,9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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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처음 배울 때 무척 헷갈리는 것이 부정문으로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다. 질문이 긍정문이든 부정문이든 상관없이 동의하면 ‘그렇다’라고 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다’라고 하는 우리 말과는 달리, 영어에서는 부정문에 동의해서 내 대답도 부정문이면 ‘노(No)’라고 하고 동의하지 않아서 내 대답이 긍정문이 되면 ‘예스(Yes)’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언어권에서나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일단 동의를 하고 나면 책임이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 지금도 남의 말로 중요한 질문에 대해 대답할 땐 한번 더 생각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편 우리 말에서는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아니라는 말은 말하는 사람의 뜻에 동의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행위이니 위아래 관계에서 정색하고 아니라는 대답을 하고 나면 분위기마저 싸해지는 것을 느낀다. 거꾸로 대충 묻어가거나 고개만 주억거려도, 잠자코만 있어도 동의했다고 받아들여지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사회에서 아니라는 대답을 상상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터다. 그러니 매번 분명하게 자기 의사를 밝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해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아니라고 말하는 게 어렵다는 것은 여전한 현실임에도 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대표적 분야가 있으니 성희롱·성폭력 쪽이다. 그렇게 싫었으면 처음부터 싫다고 했으면 될 일이라든지,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으니 동의한 걸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반응들이 속출한다. 마치 한국 사회가 싫은 것은 싫다고 의사표명을 분명히 하는 나이 어린 사람(특히 나이 어린 여성)을 존중해온 듯 말이다.

이런 일이라는 것이 애초에 권력의 차이가 있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는 사실 역시 모르는 척 “왜 처음부터 아니라고 하지 못했느냐”며 피해자를 다그친다. 이 말은 사실 “처음에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으면 끝까지 가만히 있을 일이지 왜 이제야 문제 삼느냐”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아니라고 하는 거 보면 너는 처음부터 아니라고 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고 그러니 이 문제는 너의 책임”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막상 이렇게 문자화해서 보면 치사하게 보여도 일상에서는 너무도 흔하게 마주하는 논리다.

사실 한국 사회는 임명권자의 정책 방향에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검찰총장을 두고 소신에 선뜻 감탄하기보다는 ‘저런 버티기를 가능하게 하는 기득권과 네트워크는 무엇일까’를 의심하는 순명(順命)의 사회다. 그렇다고 아닌 일에 아니라고 해야 할 책임이 시민들 모두에게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아니라고 말할 자유를 이미 누구나가 누리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권력자들의 책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누구나가 자유롭게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사회 구현은 아주 공들여서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9년 5월 22일

원문보기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11734/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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