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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중동의 불꽃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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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6-20 16:20 조회25,2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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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가 폭발할 것인가? 13일 이란 인근 오만만에서 대형 유조선 2척이 공격받은 후 긴장이 치솟고 있다. 미국은 즉각 이란에 책임이 있다고 나선 반면 이란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이번 공격의 주체를 둘러싼 말싸움이 진짜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트럼프 정부는 이 지역에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고, 이란도 이에 군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군사적 긴장이 팽팽하다. 유조선 공격의 불똥이 이 팽팽한 긴장을 폭발시킬 불씨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불꽃 뒤에는 많은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이란 핵합의(JCPOA)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긴장은 격화되고 있었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 등이 경제제재를 해제해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정권에서 체결한 핵합의에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해왔다. 합의가 이란의 핵무장을 완전히 막을 수 없을뿐더러 미사일 개발이나 테러리스트 지원과 같은 문제들은 아예 포함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추가 협상을 하기보다는, 이 문제들을 구실 삼아 핵합의 자체를 깨뜨리려는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 지난해 5월 이란이 합의 조건을 어겼다며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하고 대이란 제재를 부활시켰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를 붕괴시킨 과거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맺은 합의에 불만을 가진 부시 행정부가 북의 합의 위반을 핑계 삼아 제네바 합의를 깨는 “모루”로 썼던 것은 볼턴이 스스로 고백한 바이기도 하다. 이란 핵합의를 깨는 데도 볼턴 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기여하고 있고, 이란에 대한 요구를 핵무기 개발 중지에서 핵물질 생산 금지, 여타 대량살상무기, 미사일, ‘테러리스트’ 지원 금지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과 겹치는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기억에서 소환되는 것은 이뿐만은 아니다. 당시 ‘악의 축’으로 거명됐던 나라가 이라크, 이란, 북한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볼턴 보좌관을 위시해 중동에서 강경노선을 내세우는 이들이 조준경을 이란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라크 전쟁을 시작으로 중동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등 반미 지도자들을 제거했고,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완전히 힘을 빼 놓았다. 이제 외롭게 남은 ‘반미의 섬’ 이란을 손볼 차례가 된 것이다.

 

1979년부터 시작된 악연이다. 중동에서 사우디 왕가와 함께 친미의 쌍두마차였던 이란 팔레비 정권이 붕괴된 것이 그해 초였다. 이란에서 팔레비 국왕과 함께 쫓겨난 미국은 차근차근 복귀를 준비했다. 바로 이듬해 카터 대통령이 페르시아만의 미국의 사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독트린을 발표했다. 1983년에는 이를 이행할 중부사령부를 신설하고, 1990년 걸프전쟁을 계기로 아예 미군을 이 지역에 상시적으로 주둔시키기 시작했다. 이 중부사령부가 이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전쟁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고, 이란과의 군사대치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적 뿌리는 더 깊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원유가 전후 경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전쟁부 차관이었던 존 매클로이는 진주만 피습 직후에도 “세계 최대 원유가 매장된 곳은 이 지역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며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을 격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가안보를 말하는 사람은 서유럽과 원유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에도 필요하지만 서유럽과 일본 경제의 부활에 필수적이며, 중동의 원유를 장악하는 나라가 서유럽과 일본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구조는 아직도 살아 있다. 일본과 독일은 여전히 원유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변화도 있다. 한국은 이제 독일보다도 수입량이 많다. 미국은 2014년부터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됐다. 원유 수입을 하긴 하지만 거의 절반을 캐나다에서 들여오고 중동 의존도를 눈에 띄게 줄였다. 이에 비해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이다. 최근 러시아 원유 수입량을 늘리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도가 미국에 이어 원유 수입 세번째이다. 원유는 여전히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지렛대다.

 

이번 유조선에 붙은 화염 뒤에는 많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19년 6월 16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98098.html#csidxc4aa5e3a14282849381e33ef5b941d1 onebyone.gif?action_id=c4aa5e3a14282849381e33ef5b941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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