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공영형 사립대, 미룰 수 없다 > 회원칼럼·언론보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회원칼럼·언론보도

[김명환] 공영형 사립대, 미룰 수 없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7-22 15:44 조회22,050회 댓글0건

본문

‘공영형 사립대’(정부책임형 사립대) 시범사업은 왜 절박할까? 얼마 전 교육부는 현재의 대입정원을 기준으로 불과 4년 후인 2023학년도에 부족한 ‘입학자원’이 무려 9만9061명이라고 밝혔다. 입학정원 1500명의 대학을 70개 가까이 없애야 하는 꼴이다. 고등교육법에 따른 4년제 일반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사이버대학 등은 현재 총 357개교이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등 다른 법률에 따른 대학도 15개교가 있지만, 단순계산으로 전체의 20% 안팎에 이르는 대학이 5, 6년 후부터 차례로 사라질 참이다. 하도 어마어마한 사태라서 이 지경이 될 줄 뻔히 알면서 엉뚱한 정책에 매달려온 당국을 비판할 짬도 없다.  

 

이 사태를 시장논리에 맡겨 대학과 학과가 학생을 못 채우면 문 닫는 게 순리라고 하면 그만일까? 지난 7월3일 교육부 사학혁신위원회가 1년5개월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낸 백서는 사학에 만연한 비리와 부정을 다시 확인해주었다. 모 대학은 신입생 충원율을 위해 교직원을 동원해 입학 정원 절반을 가짜 학생으로 채웠듯이, 대학 운영권을 쥔 비리집단은 온갖 편법을 통해 학생 등 구성원과 지역사회에 피해를 끼치며 버틸 것이다. 비리사학에 시장의 정상적 작동은 없다. 공영형 사립대의 절박함이 여기에 있다.
 

공영형 사립대 주창자들은 국제 기준에 따라 대학 예산의 50% 이상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듯이 전국 모든 사립대에 당장 정부가 예산의 50%를 지원하는 일은 부실비리 대학에 국민 세금을 퍼붓는다는 비판 때문에 불가능하다. 현 정부의 대선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사업 진척이 더딘 가장 큰 이유이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자격을 갖춘 대학들을 몇 곳만이라도 선정하여 그 규모에 따라 100억~300억원을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즉 당장 예산의 50%를 지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부족하고 정책 당국의 의지는 더욱 모자란 상황에서 시범사업의 물꼬를 트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다시 정상화된 강원도 모 대학의 연 예산은 약 740억원이다. 이 대학에 우선 연 100억원을 지원하고 매년 적절하게 증액한다면 연구와 교육을 위해 이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다. 또 경기도의 모 대학은 정상화의 기틀을 잡은 교수들이 어려운 학교 재정에도 ‘시간강사 해고 제로’를 다짐하고 있다. 이 대학의 예산은 더욱 적어 연 520억원이다. 내년에 50억원만 지원해도 학교는 활기로 가득 찰 것이다.  

 

시범사업에 대해 회의론도 나올 수 있다. 적절한 정부 지원이 따라도 연구와 교육의 질은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달라진다. 심지어 대학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운 교수와 직원들이 공영형 사립대 지원을 받더라도 학생들을 교양 있는 민주시민이자 유능한 사회인으로 잘 길러낼지는 냉정히 말해 별개의 문제이다. 할 일은 산같이 쌓여 있다.  

 

그러나 서너 대학이라도 시범사업을 개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비리집단을 몰아낸 학교라고 해도 대부분 임시이사체제이며 소위 ‘자율개선대학’ 밑의 ‘역량강화대학’이라 불안정하다. 그 틈을 노린 비리세력은 학교 안팎에서 복귀를 위해 종종 말썽을 일으킨다. 또 노골적인 비리 가담자는 아니어도 대학의 앞날을 확신하지 못해 몸을 사리는 이도 많다. 하지만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대학 발전을 지원할 때, 적폐집단을 더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일이 한결 쉬워진다.

 

나아가 시범대학들의 약진을 보며 전국 각지의 사립대, 특히 상대적으로 안정된 신분 위에 현실 변화에 둔감한 교수들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대학 운영자에게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 이들이 망가질 위기의 학교를 알뜰하게 살릴 주역으로 다시 태어나야 대학 간 통폐합이나 네트워크화가 효율적이고 내실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촛불의 길에 현상유지는 불가능하며,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맙소사, 몇 년 안에 대입 정원 10만명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대학 규모는 줄여도 대학 숫자까지 정원 감축에 맞춰 기계적으로 줄이면 안된다. 지역에 자리한 알찬 소규모 대학 하나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나라의 균형발전에 끼치는 긍정적 역할은 지대하다. 한국 대학이 활력이 넘치는 학문 생태계를 이루도록 향후 10년 동안 연 4조, 5조원 이상을 늘리는 과감한 고등교육 장기투자계획이 나와야 한다. 국제 지표와 우리의 경제 역량에 비춰 하등 무리한 일이 아니며, 그 첫 단추는 공영형 사립대이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

 

경향신문 2019년 7월 11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112034015&code=990308#csidx62b4ee10661ad7d88c5cfdbc5bd02ff onebyone.gif?action_id=62b4ee10661ad7d88c5cfdbc5bd02ff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Segyo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EL. 02-3143-2902 FAX. 02-3143-2903 E-Mail. segyo@segyo.org
04004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로12길 7 (서교동 475-34) 창비서교빌딩 2층 (사)세교연구소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