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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그런 정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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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7-22 15:41 조회22,3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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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태국 내 멸종위기종인 대왕조개를 채취해 먹는 모습이 방영됐고, 그 장면이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며 논란이 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현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제작진이 사과했지만 벌금형은 물론 조개를 채취한 출연자는 실형까지 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현지업체가 규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둥 무리한 촬영으로 언젠간 사고가 날 줄 알았다는 둥 다양한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또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해당 예능프로그램은 마치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을 보는 것처럼, 큰 고생이라고는 안해봤을 것 같은 연예인들이 극한 오지에서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직접 마련하는 광경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이번 촬영이 안다만해역의 태국 핫차오마이 국립공원에서 현지 대행업체의 허가를 받고 이뤄졌다는 사실에서 보듯, 방송을 통해 우리가 보는 정글은 무법의 공간이나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름다운 자연이란 방치된 곳이 아니라 엄격하게 규제되고 관리된 곳일 확률이 높다. 이는 한국에서도 웬만한 경승지는 국립공원·세계문화유산·지역문화재 등으로 묶여 있는 상황과 같다.

사실 인류학자들 사이에 유명한 한 만평에는, 현대식 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이 망을 보고 있다가 인류학자가 오자 살림살이를 모두 치우고 서구인이 상상하는 옛 원주민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중국 연구를 하는 학자로부터 어느 소수민족 자치구 민속촌에서는 관광객들이 오는 시간에는 주민들이 전통복장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주민은 모두 민속촌 밖의 지역에 살면서 출퇴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필자가 조사한 캐나다 서부지역의 원주민들도 기본적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다. 그들 다수는 어떻게 하면 원주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고,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남을지를 고민한다. 그들은 오래전에 멸종한 인간들도 아니고 사라져가는 과정에 있지도 않으며, 지금 여기를 사는 중이다. 사실 1년에도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밴쿠버를 비롯한 캐나다 서부 관광지를 방문하고, 거기서 원주민과 그들의 문화를 만나고 있다. 그럼에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인구의 5% 이상을 차지하는 원주민이 현대 속에 함께 살아가는 주민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매우 놀랍다.

정글이든 원주민이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우리가 방문하는 모든 지역 가운데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경우는 없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거기까지 장비를 들고 찾아가 장기간 숙식을 해야만 촬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정글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좀 먹고살 만하게 된 한국사람들이 원주민은 야만인으로 취급하고 아무 데서나 야생을 떠올리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정글이 아닌 곳을 정글로 보고 마음 편히 행동한 결과는 매우 현실적으로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농민신문 2019년 7월 17일

원문보기 :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13532/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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