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블랙리스트 문체부 관료의 적반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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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2-28 12:24 조회33,3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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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고위 공무원이며 현재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파견되어 있는 한민호 사무처장이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 윤철호 회장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하고 민사소송도 제기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7일 윤철호 회장은 문체부가 작년 12월31일 발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이 불공정하고 불철저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윤태용 한국저작권보호원장과 한민호 사무처장의 실명을 거론했는데, 후자가 자신의 명예를 크게 훼손했다며 고소·고발을 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6년 8월, 당시 한민호는 문체부 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SNS상의 댓글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고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대한민국 지성사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 책입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상응하는 책을 ‘해당 출판사가’ 내야 하거늘” 운운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자발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실행하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의심이 든다. 더구나 출협 회장의 성명은 당시의 담당 과장은 수사의뢰를 하면서 그 상급자였던 한민호에 대해 아무 조치가 없는 명백한 모순을 지적했을 뿐이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경과를 잠깐 되돌아보자. 2017년 7월 문체부 산하 민관합동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공동위원장은 신학철 화백, 도종환 문체부 장관)가 출범하여 1년 가까이 활동한 후, 2018년 6월 권고안을 제출하여 관련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131명(수사의뢰 26명, 징계 105명)의 책임규명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문체부가 9월에 발표한 이행계획은 검토 대상 68명(수사의뢰 24명, 징계 44명) 중 수사의뢰 7명, 주의 조치 12명에 그쳤다.
문화예술계는 사실상 징계가 전혀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11월3일 문화예술인들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9시간 이상 걸려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항의 행진했으며, 11월8일 청와대 앞에서 이용선 시민사회수석을 만나 철저한 책임규명 대책수립을 요구했다. 이 수석은 문화예술계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전달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12월31일 문체부는 관련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10명을 수사의뢰, 68명을 징계와 주의 조치(문체부 소속 징계대상자는 단 1명!)하는 최종 이행계획을 내놓고 장관과 간부들의 2차 대국민 사과로 마무리하려 들었다.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내세우지만 이 최종 대책도 턱없이 부족하여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출협 회장의 성명에 민·형사상의 명예훼손을 걸어오다니 도대체 무슨 짓인가. 말문이 막힐 지경이지만, 두 가지만 강조한다.
첫째, 블랙리스트 관련 기소는 형법 123조 공무원의 직권 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죄를 근거로 하지만, 이런 형사재판이 초유의 일이라 확립된 판례가 없어 이미 재판 중인 피고인들은 법의 틈새를 이용해 빠져나가려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설령 관련 법률이 미비하더라도 검찰과 사법부는 우리 헌법의 정신과 함께 제22조 1항(“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등 관련 조항을 명심해야 한다.블랙리스트에 대한 단호한 처벌은 헌법적 의무이다. 따라서 검찰은 문체부가 넘긴 수사대상자에 국한하지 말고 철저하고 광범위한 수사를 해야 한다. 사법부 또한 숱한 촛불들이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헌법과 법률이 지켜지는 국가를 요구한 시대정신에 맞는 판례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블랙리스트 관련자 처벌이야말로 정부 안의 수많은 양심적이고 유능한 공무원들을 살리는 길이다. 상급자의 지시를 어기기 어렵다는 핑계, 과거의 공로, 다른 사안과의 형평성 등을 명분으로 처벌을 흐지부지한다면,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다 고초를 겪은 공직자는 물론이고 양심과 원칙을 지키려고 남몰래 애쓰며 고통을 당한 더 많은 이들은 대체 뭐가 되는가. 엄정한 처벌만이 나라 운영의 중추인 공무원 사회를 구한다.
끝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이해찬 대표에게 호소한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말바꾸기와 꼼수에 매달리지 말고 하루속히 자유한국당 아닌 야당들과 흔쾌히 합의해야 한다. 당신들이 기득권에 눈멀어 머뭇거리는 와중에 적폐 관료마저 털끝만 한 반성 없이 적반하장의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감히 5·18을 폄훼하는 배짱은 또 어디서 나오겠는가. 내년 4월 총선에서 집권당의 승리와 함께 촛불혁명의 진전을 위한 발판을 놓을 시한, 즉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려야 할 시한이 불과 보름도 남지 않았다. 집권당이 주저하면 대통령이라도 직접 나서야 한다. ‘촛불정부’는 국민의 뜻을 외면한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없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과 교수
경향신문 2019년 2월 14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2142037015&code=990308#csidx8a6001079ba905da2a65214733e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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