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수] 충혼과 민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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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4-25 12:55 조회29,5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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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부산에서 ‘낙동인문강좌’라는 이름으로 낙동강을 끼고 있는 서부산 쪽 연혁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문열의 중편 <하구>(1981)가 1960년대 후반 하단포(소설에는 ‘강진’이라는 지명으로 등장)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터라, 그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물론 ‘낙동강의 파수꾼’ 김정한 선생의 단편 <모래톱 이야기>(1966)도 빠뜨릴 수 없었다.
부산이 고향이긴 해도 자라면서 하단, 괴정, 명지 등 서부산 인근은 가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생생한 지역 역사는 그곳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이 내게 들려주는 상황이 되었다. 1950년대 한적한 어촌이었다가 부산시로 편입되면서 유원지로 각광받고, 건설 붐을 타고 모랫배 사업자들이 몰려들고, 이후 낙동강 하굿둑 공사와 함께 매립이 진행되면서 지금은 아파트숲으로 변해버린 하단포의 역사가 하나하나 흘러나왔고, 알고 보니 강좌가 진행되고 있는 ‘사하구평생학습관’ 자리가 소설의 배경인 하단 포구의 한 자락이었다. 구덕산에서 발원한 괴정천이 흘러들어 낙동과 만나는 곳이 하단포인데, 학습관 바로 옆의 복개천이 바로 그 괴정천이었던 것이다. 흔히 이문열의 초기 소설은 낭만주의적 색채가 짙다고 이야기되는데, 그 낭만주의는 <하구>처럼 치밀한 사실의 언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강좌를 마치고는 낙동강 하굿둑을 건너 을숙도며 명지 쪽도 돌아보았다. 강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모래톱 이야기>의 중학생 건우는 명지의 조마이섬(지금 을숙도 자리)에서 나룻배로 하단포로 건너와 버스를 타고 시내의 학교로 등교하는 ‘나릿배 통학생’이다. 아버지는 6·25 때 전사하고 어머니, 할아버지, 삼촌과 산다. 가정방문 때 선생님에게 “나릿배만 진작 타지고 빠른 날은 두어 시간만 하면 됨더” 하던 건우다. 지각이 잦을 수밖에. 홍수가 나 섬이 잠길 위기에 처하자 건우의 조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부패한 권력과 지방 유력자가 결탁해 만들어놓은 엉터리 둑을 허물다 사람을 해하게 된다. 조부가 구속된 뒤 건우는 새 학기가 되어도 학교에 나타나지 않는다. 건우의 뒷이야기가 걱정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잘 자랐으리라. 을숙도 건너 명지신도시에는 아파트가 빽빽하게 올라와 있었다.
부산역에 내리면 건너편 산 위로 커다란 조형물이 보인다. 부산 출신 전몰군경들을 모신 ‘충혼탑’인데, 몇년 전 처음 가보았다. 산복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이 훌륭했다. 바다 쪽으로 부산항대교와 영도, 용두산공원과 송도까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구덕산 아래 주택가가 푸근하게 엎드려 있었다. 그곳 전망이 기억나 해질 무렵 다시 찾았다. 지난번에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공원 이름으로 중앙공원과 민주공원을 병기하고 있었다. 원래 ‘중앙공원’이던 것이 1999년 부마항쟁 20주년을 맞아 충혼탑 맞은편에 부산민주항쟁기념관을 건립하게 되면서 ‘민주공원’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얻게 되었다고 한다. 웅장한 충혼탑 앞 표지석을 보니 건립연도가 1983년이었다. 충혼탑에서 내려다보면 계단 아래로 민주항쟁기념관이 가까이 보인다.
묘한 감흥이 일었다. 우리의 굴곡진 현대사는 이상한 방식으로 ‘충혼’과 ‘민주’ 사이를 멀찍이 벌려오지 않았는가. 가령 이문열의 <하구>에 나오는 서 노인의 이야기 같은 것. ‘좌익 활동’ 경력이 있는 그이는 군경의 ‘공비 토벌’ 때 간신히 살아남은 뒤 하단포의 모래톱으로 숨어든다. 하단 포구에서 힘들게 새 가족을 일군 그이는 뒤늦게 나타난 고향의 아들을 끝내 부인한다. 분단 체제 아래서 독재 정권은 반공을 가장 손쉬운 정권 안보의 수단으로 삼았고, 정당한 민주화의 요구까지 ‘용공’과 ‘종북’,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뒤틀린 이념 사냥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우파’를 자처하는 기득권 세력은 현실의 변화에 눈감은 맹목과 혐오의 언어를 놓지 않았다.
먼 이야기가 아니며, 지금 당장에도 ‘좌파 프레임’이라는 허구의 망령은 사실과 실질, 상호 관용과 이해에 기반해야 할 공론장을 끊임없이 타락시키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민주’ 쪽에도 ‘도덕적 오만’과 같은 형태로 얼룩은 남았으며, 가령 작가 이문열은 그 이념 갈등에 과도한 피해의식으로 개입하면서 안타깝게도 자신의 문학에 대한 온당한 평가마저 어렵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충혼’과 ‘민주’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중앙·민주’공원의 가파른 산비탈은 6·25 피난민들의 처절한 생존의지의 현장이기도 하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19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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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90224.html#csidx4512ff086c351e5a45a1c83ea5edf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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