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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강사법을 곡해한 서울대 학장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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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11-30 15:52 조회37,2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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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서울대 15개 단과대학 학장님들, 7개 전문대학원 원장님들께 드립니다.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쓰는 이 공개편지를 혜량해주십시오. 지난 19일 학장님들은 국회 통과를 앞둔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문을 발표하여 논란을 자초하셨습니다. 그러나 학장님들 자신은 결코 강사법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실 듯합니다. 입장문 첫머리는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고생하는 학문혁신세대인 시간강사들에 대한 처우와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며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 현재 국회에서 입법과정 중인 개정 강사법도 그 과업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이해된다.”

강사 문제 해결을 위해 장기간 싸운 당사자도 일단 고마워할 발언입니다. 그러나 입장문에서 새 강사법에 대해 내놓은 네가지 주장을 뜯어보면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먼저 입장문은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사회 수요에 부응하고 이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시의성과 다양성, 유연성 확보가 절실”한데 “단기임용을 제한”하면 곤란하다고 합니다. 그동안 학기 단위로 임용하던 강사의 불안정한 고용이 이제 1년 단위로 바뀝니다. 그런데 6개월 아닌 1년 단위로 임용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데 정말 지장을 줄까요? 대학 강단에 선 지 35년째이지만, 저는 고작 6개월이 문제가 될 만큼 ‘교육의 시의성’이 분초를 다투는 줄 처음 알았고, ‘교육의 유연성’은 끝내 해독하지 못했습니다. 무기계약직도 아니고 3년까지 재임용 절차를 보장할 뿐인 강사에 대해 이런 논리를 펴시면, 전임교수의 정년보장제 폐지 주장이 나올 때 대체 어떻게 답하실 참입니까. 

 

둘째, “소수의 강사가 일정한 수 이상의 강의를 의무적으로 맡게 되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2011년 통과된 강사법은 강사 1인에게 학기당 9학점(통상 3과목)을 배정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법은 대학 현장에서 실행도 불가능할뿐더러, 강사의 대량해고를 불러올 악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4번에 걸쳐 시행이 유예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새 강사법은 학기당 6시간 이하를 배정합니다. 한 과목 배정도 무방하고 불가피하면 1년에 한 과목만 맡을 수도 있으며, 구체적 사항은 대학과 강사의 임용계약에 따릅니다. 새 강사법 자료를 검토하고도 이렇게 잘못된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요.


네번째 주장인 “신진 학자들의 강의의 기회가 줄어들어 학문혁신세대가 교육 경험을 쌓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말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형편없는 처우를 받는 전국의 시간강사는 2017년 기준 약 7만6천명(전업 4만명, 비전업 3만6천명)입니다. 당연히 매년 이직과 퇴직이 많고 일부는 전임교수가 됩니다. 그러니 신진 학자의 기회에 대한 우려는 기우일 뿐입니다. 물론 시행 초기에 일시적인 어려움은 예상됩니다. 수십년 쌓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부작용이 없다고 우긴다면 무리한 주장일 겁니다. 그러나 개혁의 긍정적인 효과에 비하면 모두 사소합니다.


가장 큰 쟁점은 “강사법으로 유발되는 재정적 적자는 대학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한다는 세번째 주장입니다. 부정확합니다. 사립대는 추가 재정 부담을 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강사법을 악용하여 시장주의적 구조조정을 꾀하고 있습니다. 많은 대학은 예산 부족을 핑계로 강좌 수를 줄이고 대형 강의를 확대하고 전임교수의 강의 시수마저 늘려 고등교육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물론 예산 증액이 뒤따라야 강사법이 안착할 것이고, 예산 확보야말로 학장님들이 하실 일입니다. 서울대 학장들이라면 정부와 국회를 향해 대학 재정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대학들을 향해 교육의 질을 유지하자는 메시지를 전했어야 합니다. 특히 사립대 인건비는 지원이 불가하다는 기획재정부의 완고함을 꺾을 설득력을 보여주셨어야 합니다. 팔 걷어붙이고 나설 일을 남의 일처럼 보는 입장문의 어조는 참으로 황망합니다. (후략)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한겨레, 2018년 11월 26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71868.html#csidx1df181b1aafeb73b45cd6836e3860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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