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경] 연말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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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1-25 13:02 조회36,2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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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1.
홍대 앞 작은 카페가 있다. 십년이란 세월을 용케 버텨온 그곳이 영업 종료를 앞두고 ‘45일간의 인디여행’이라는 공연을 기획했다. 보나 마나 임대료 때문이겠지. 하긴 천지개벽했다는 홍대 앞에서 참 잘도 버텼다 싶다.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좋은 공연 소식에 들떠버렸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난감했던 찰나, 카페 옆 커다란 상점이 눈에 들어온다. 저기서 시간을 보내면 되겠네. 이왕 온 김에 쇼핑을 해결한다면 바쁜 연말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 터.
비닐봉지 가득 물건을 담고 바삐 공연장에 들어서자,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뮤지션이 말을 걸어온다. “옆에 새로 생긴 거기 다녀오셨나 봐요? 7층이나 되던데. 이젠 관광객들도 다 거기서 산대요.” 그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고 만다. 그제야 방금 전 들렀던 거대한 상점이 그의 공연장, 작업실, 놀이터를 밀어버렸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위풍당당한 위용을 뽐내는 그 메가스토어가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상징이겠구나. 주변을 대낮같이 환하게 밝히는 그 불빛 아래 몇몇의 담뱃불이 힘없이 깜박이다 스러졌겠구나.
#단상 2.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지금 다른 친구들은 밤잠 안 자고 뛰고 있어요. 일단 경쟁에서 이겨 놓고.” 학위나 스펙보다 온갖 다른 일에 푹 빠져 있는 한 학생에게 이런 말을 던져놓고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선생이랍시고 기껏 던진 충고가 일단 경쟁사회에서 이겨야 한다는 논리라니. 게다가 간신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주변 친구들과의 비교까지 서슴지 않고 말이다.
가뜩이나 주눅 들어 있었던 학생은 나의 채근에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깜박인다. “그게….”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못 느꼈는지 그렇게 대화는 끊기고 만다. 지면과 강단 곳곳에서 일상을 포획해버린 신자유주의를 비판했지만, 결국 나 자신 또한 그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쟁보다 협력하며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그 학생이 뒤처질까 걱정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뒤처진단 말인가. 설혹 그렇다고 해도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단상 3.
연말 모임의 주요 화젯거리는 당연히 경제 문제다. 주범은 주 52시간 초과 근로 금지와 최저임금이다. 이 때문에 웬만한 기업이라면 다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기업 걱정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바로 임노동자이며 최저임금 대상자인 아르바이트 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삼성이나 현대가 잘돼야 하는데, 지금 주가가 떨어지고 이러다가 다 죽어요”, “최저임금 때문에 알바를 구하기 어려우니 그냥 조금 받았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드는 의문점은 왜 노동자가 기업 걱정하는 것만큼 기업은 노동자를 걱정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누군가는 “세상 가장 쓸데없는 짓이 바로 대기업과 자본가 걱정하는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하긴 아무리 경제가 안 좋아도 자본가들의 삶은 생활비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럼에도 우리네 이웃들은 올해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공간에서 내몰린 예술가들은 또 다른 장소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며, 모두가 한곳을 보며 경쟁할 때 몇몇은 다른 길을 내는 데 골몰할 것이다. 주류 담론에 현혹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들의 몸부림이 있는 한 우리 모두는 비관하거나 낙담할 수 없다. 그것이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비관 금지! 낙담 금지! 그리고 무엇보다 무관심 금지! 2019년의 다짐이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겨레신문. 2019년 1월 9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7704.html#csidxfcc1bedd676b6889d4918186d84b3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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