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북한의 원산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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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1-25 13:10 조회35,2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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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따라 생각하게 되고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이다. 말이 다르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남북’이라는 말을 ‘한반도’라는 말로 바꿔보는 게 좋겠다. ‘남북’이라는 말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국가체제가 중심이 된다. ‘한반도’라고 하면 세계와 남북한, 지역과 시민의 다양한 연결이 떠오른다.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새해로 넘어온 가운데 북한은 2019년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 남북·북미 관계의 개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자립경제 강화 등을 언급했다. 새해 과제를 ‘한반도’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보자.
첫째, 북핵과 북한 제재는 세계체제 문제다. 비핵화를 놓고 북핵 비핵화인지 한반도 비핵화인지의 개념상 차이가 크다. 그리고 두 개념 모두 2차대전 이후 핵과 공군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적 차원의 군사체제와 연결되어 있다. 대북 제재의 국제법체제도 북핵과 관련된 부분과 함께 금융질서와 인권 차원의 제재가 중첩되어 있다. 비핵화나 제재완화 문제 모두 세계체제 문제여서 일거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이 점을 감안해서 기대수준을 지나치게 높여서는 안된다.
둘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공단 복원 차원에 가두어서는 안된다. 개성공단을 국제 제재의 틀을 우회하여 복원하겠다는 발상은 현실적이지 않다. 섣부른 정경분리 움직임이 자칫 평화체제로의 진전에 역행하는 흐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진전되고 있는 ‘남북연합’의 특수한 거버넌스 형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연합적 거버넌스는 2000~2007년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2007년의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의 경험이 있다. 여기서 나아가 초(超)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지역공동체 위원회로 발전시켜나가는 전망이 필요하다.
셋째, ‘한반도 신경제지도’나 ‘동북아 철도공동체’의 구상은 글로벌 네트워크 현실과 괴리가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는 집중화돼 있으며 비대칭적이다. 무역 네트워크만 하더라도 크게 북미·동아시아 네트워크와 유럽 네트워크로 양분되어 있다. 현재 네트워크에서 남한은 북미·동아시아 네트워크의 반주변부에 위치해있다. 북한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한반도 국토공간을 H자로 편성하고 이를 대륙으로 연결하는 것은 엄청난 인프라 투자를 요구하는 반면, 네트워크의 이익은 크지 않다. 남북 네트워크를 북방 대륙으로 연결해서 이익을 얻으려면, 한반도가 북미·동아시아와 유럽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반도 네트워크 공간을 확장하는 노드·허브는 동남아·태평양 공간으로 이어지는 혁신도시이다. 철도보다는 해항도시가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에 효과적이다.
세계체제·분단체제·국내체제를 새롭게 혁신할 수 있는 세계·한반도·지역의 맥점은 어디일까? 원산지구, 한강·임진강 수변도시, 남해(남부) 광역경제권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평화·경제의 공유지(커먼스)로서의 잠재력과 가능성 측면에서 원산을 주목한다.
2010년대 이후의 세계체제 조건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이 추진되었던 때와는 크게 달라졌다. 미국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변화가 없다. 그러나 중국이 동아시아 네트워크의 중심부 가까이에 진입했고, 미·중 간 지정·지경학적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남북한·미국·일본이 평화·경제 협력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동해지역이다.
원산은 천혜의 항구다. 일본이 주도한 강화도조약에서도 부산과 함께 개항지로 지목된 곳이 원산(1880)과 인천(1883)이었다. 이후 서구와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설치된 조선해관은 인천, 원산, 부산의 순서로 만들어졌다. 열강들은 통상항과 함께 군항에도 주목했다. 영국은 거문도·제주도에, 러시아는 원산·부산·마산에 관심을 두었다.
원산은 군사적 요충지로 일제시대에 중화학공업이 발전했다. 명사십리·송도원 등 명승을 지니고 있고, 금강산·마식령·칠보산과 이어지는 곳이다. 원산은 김정은 위원장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북한은 이를 세계적 관광특구로 키우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평양은 정치수도, 원산은 경제수도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좀 더 대담한 상상을 해보자. 원산을 평화·경제의 글로벌 공간으로 내어놓는 것은 어떤가? 원산을 새로운 시대의 세계도시 공유지로 만들어가면 어떨까? 과거 조계가 들어섰던 상하이의 푸시 지역은 중국 근대경제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 푸둥 개발로 상하이는 다시 세계 중심이 되었다. 원산이 ‘한반도’의 상하이가 될 수는 없을까?
이일영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
(경향신문, 2019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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