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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스포츠권을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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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7-22 15:39 조회22,3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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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퀴즈 몇개를 풀어보자. 건강을 위할 겸 환경도 위할 겸 해서 되도록 걸어 다니고 계단을 이용하는 것, 스포츠인가 아닌가. 장애인들이 무용과 몸동작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 스포츠인가 아닌가.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웃음율동 테라피에 참여하는 것, 스포츠인가 아닌가.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어린이의 놀권리 회복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것, 스포츠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

 

이 모두 넓은 뜻에서 스포츠에 속한다고 보는 게 21세기의 정답에 가깝다. 스포츠가 아무리 좋다 한들 그렇게까지 범위를 넓히는 건 좀 지나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면,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스포츠는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안녕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도움이 되는 모든 형태의 신체활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놀이, 레크리에이션, 생활 스포츠와 경쟁 스포츠, 원주민들의 전통 유희활동 등이 다 포함된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목적이 되는 활동이다. 나는 몇년 전 <한겨레> 지면에 기고한 ‘올림픽, 스포츠, 인권’이라는 글에서 스포츠의 내재적 가치와 스포츠 인권에 대하여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스포츠계의 일탈, 잠깐 주목과 망각이 되풀이되는 사이클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대대적인 인식변화와 어떤 발본적인 조치가 있어야만 하겠다.

 

스포츠의 내적 가치는 유네스코가 1978년에 선포한 ‘체육 교육과 스포츠 헌장’에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모든 사람의 기본인권으로서의 체육 교육과 스포츠 활동을 규정한 1조를 보라. “모든 사람은 자신의 필수적 인성 계발에 반드시 필요한 체육 교육과 스포츠에 대해 근본적 접근권을 가진다. 교육 시스템 내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체육 교육과 스포츠를 통하여 신체적, 지성적, 도덕적 역량을 발전시킬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지금까지 말한 바가 주로 스포츠 자체의 중요성이라면, 스포츠가 인간 사회에 공헌하는 혜택과 선익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논할 때가 되었다. 국제사회는 오래전부터 스포츠의 이러한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어쩌면 이런 논점에 주목하는 편이 스포츠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을 넓히는 데 더욱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선,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스포츠가 건강에 미치는 선기능을 상기해야 한다. 심혈관 질병, 암, 당뇨 등 비감염성 질환의 예방과 완화에 운동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현대인들의 신체활동 저하는 세계적인 보건 문제가 되어 있다. 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에 끼치는 영향이 천문학적 규모이기 때문이다. 몇년 전 캐나다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운동 부족 탓에 발생한 건강 관련 손실액이 무려 6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 활동에 1달러를 투자하면 의료비를 3.2달러 이상 절약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둘째, 스포츠가 교육에 미치는 순기능을 살펴보면 눈이 번쩍 떠질 정도다. 따지고 보면 모든 교과목 중 ‘몸’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과목은 체육밖에 없다. 몸을 사용해야 하는 스포츠는 자기 몸과 타인의 몸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태도를 길러준다. 이렇게 되면 자해와 자살 충동 그리고 각종 중독성 활동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격성과 폭력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유엔은 스포츠를 통해 체득할 수 있는 능력과 가치를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협동정신, 페어플레이, 의사소통, 나눔, 규칙 존중, 자존감과 자중, 문제 해결, 신뢰, 이해력, 정직성, 타인과의 유대, 리더십, 관용, 상대방 존중, 회복탄력성, 노력의 가치, 팀워크, 이기는 법과 지는 법, 자신감, 규율, 올바른 경쟁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장점들을 생각하면 왜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평생학교’ 역할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간다. 11살에서 17살 사이 청소년들의 운동 부족 비율을 비교한 결과 한국이 120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는 조사도 있다. 나는 머리만 쓰도록 강요당하고 몸을 쓸 기회가 적은, 통제적이고 앉아서 생활하는 상황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집착, 가상현실에의 탐닉, 전혀 새로운 유형의 행동반응 등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면으로 그것에 대응하기보다 간접적이고 에두른 방식의 접근이 훨씬 더 효과가 있고 갈등을 덜 유발한다는 사실이 근년 들어 많이 밝혀지고 있다. 정공법적인 대처는 그 의도와는 달리 또 다른 갈등과 반발을 불러올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사회문제의 만병통치약은 아닐지라도 많은 경우에 ‘뜻밖의’ 묘약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셋째, 현재 국제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지속가능 발전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도 스포츠가 할 수 있는 몫이 적지 않다. 스포츠를 통한 경제 발전, 특히 지역경제 발전의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스포츠용품 제조 활동, 스포츠 관련 일자리 창출, 스포츠 인프라 건설 등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라고 유엔은 권고한다.

 

마지막으로 스포츠가 평화에 기여하는 바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이 남북한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상징적인 이정표가 되었던 광경이 생생하지 않은가. 난민들의 정착과 난민 청소년들의 심리적 안정 및 교육 동기 유발에도 스포츠가 큰 역할을 한다. 스포츠를 통해 소년병들의 치유와 사회통합을 촉진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스포츠의 이런 효과들은 결국 스포츠가 인간의 보편적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그런데 이런 수준에서까지 스포츠의 의미를 찾으려면 우리가 스포츠를 대하는 인식과 태도를 질적으로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선수들의 ‘몸값’ 운운하는 천박한 상업주의적 가치관, 그 어떤 원칙도 메달 따기라는 지상목표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현실을 혁파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스포츠권 또는 ‘스포츠 및 놀이 할 권리’라는 대원칙에 동의한다면 국가에 대해 그런 원칙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주지시켜야 한다. 최근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스포츠기본법의 제정을 제안한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진전된 발상이다.

 

이 제안에 따르면 스포츠기본법은 스포츠 패러다임의 전환 및 확장을 선도하는 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학교스포츠, 생활(평생)스포츠, 엘리트스포츠 및 아동·청소년, 여성, 장애인, 노인, 이주민 등 모두의 스포츠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과 정책 수립, 그리고 신체활동 증진을 위해 구체적으로 필요한 정부의 시책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어떤 학생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보육원 출신 형들 그리고 탈북 새터민 형들과 함께 자전거로 동해안을 주파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질적인 두 그룹이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긴 여정을 의외로 유쾌하게 끝낼 수 있었다는 거다. 스포츠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입증한 예화에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스포츠기본법이 만들어져 젊은이들의 이런 멋진 시도들이 과감하게 지원받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한겨레신문 2019년 7월 16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2053.html#csidx8abd8c5b9099d1d8babf4116ff06fa4 onebyone.gif?action_id=8abd8c5b9099d1d8babf4116ff06f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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