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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대한민국에 바치는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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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1-08 11:49 조회36,0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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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래도 “한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해서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의한 내용이 부끄럽다. 둘은 “비핵화만이 한반도의 경제적 번영과 지속적 평화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올해 양국 정상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평화체제의 구축’에 합의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이들은 벌써 몇달 전의 합의를 잊은 것일까?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가 비핵화를 향한 유효한 길이 될 수 있음을, 최소한 양자가 같이 가야 함을 부인하는 이들의 강변이 나는 부끄럽다.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이유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1950년 11월부터 미국이 북에 가해온 핵 위협, 한국의 국방비가 북의 국가 예산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군사적 불균형, 미국과 한국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적 인식조차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일방적 주장을 “북한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현행 제재를 강력히 이행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에 동의했다”고 천명한다. 나는 제재라는 힘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겠다는 형용모순이 부끄럽다. 한·미의 입장을 북이 받아들이도록 만들겠다는 힘의 논리를 외교적 수사로 표현한 것이라면 더욱 부끄럽다. 나아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까지 하니 얼굴을 들 수 없다.

 

바로 그러한 힘의 논리가 북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핵무장을 재촉한 것 아니던가. 힘과 힘으로 대결하는 관계를 이제는 끝내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보자고 합의했던 것 아니던가. 그 합의의 본질을 휴지처럼 던져버리는 양국 정상의 후안무치가 나는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둘러싼 한가지 우려를 덜었다고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나 고위급회담 이전에 답방이 이뤄지면 ‘부담’이 될까 염려했는데,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그런 우려가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 또한 부끄럽다. 나는 문 대통령이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와 회담을 하기 전 미 대통령의 양해를 구했다고 들은 바 없다. 더욱이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 아닌가. 왜 남북관계는 미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일까.

 

문 대통령은 전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고 좋아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만큼 김 위원장과 함께 남은 합의를 마저 다 이행하기를 바라고, 또 김 위원장이 바라는 바를 이뤄주겠다”고 했다고.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전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대북 비인도적 지원, 교육 및 문화교류 지원금,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출 등을 금지하며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강화했을까?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답방) 자체가 한반도 남북 간 화해, 평화의 진전, 나아가 비핵화 진전에 아주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런 기대를 공개적으로 밝히려면 지난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도 돌아봐야 덜 부끄럽지 않겠는가.

 

세밑을 앞두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 옷깃이나마 다시 여미어본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18년 12월 5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3210.html#csidx8b609298d91d4ceaa04baf2577a1118 onebyone.gif?action_id=8b609298d91d4ceaa04baf2577a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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