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작가와 출판계 연대로 '저작권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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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3-21 13:48 조회31,2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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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8일 국회에서 ‘저작권, 지식의 공공성, 출판산업’이라는 제목의 저작권 법규와 제도 개선 공청회가 열렸다. 한국작가회의,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문학번역원이 우상호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공동주최하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후원한 이 행사는 작가와 출판계가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공동으로 꾀한 첫 자리다. 덕분에 국회의원 두 사람을 포함해 청중으로 꽉 찬 행사장은 토론의 열기로 뜨거웠다.
국제 작가조직인 펜(PEN)이 2016년 저작권 보호 선언에서 “저자의 경제적 독립과 자율성은 표현의 자유에 핵심적이며, 그것은 다양한 목소리를 장려하고 다양한 목소리는 민주주의를 촉진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저작권,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는 긴밀하게 얽혀 있다. 또 작가의 권리, 즉 저작권 보호는 작가와 협력하며 저작물을 출간하는 출판사의 역할과 뗄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저자와 출판사는 함께 고초를 치렀다.
그럼에도 저작자와 출판사의 권리를 대립관계로 보는 시각이 있다. 물론 개별적 차원에서 작가와 출판사 간 갈등은 자주 벌어진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양자가 상생관계이며 서로 협력하여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본질을 가릴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의 저작권 관련 기구들은 이 중요한 진실을 오인하거나 일부러 외면한다. 토론자로 진작 섭외한 저작권위원회 소속 변호사가 별 이유 없이 불참을 통보해와 급히 토론자를 교체한 것도 하나의 방증이다. 사실 그 배경에는 저작권 보호를 위한 작가들의 조직적 노력이 부족했던 역사가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 맞선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절부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한국작가회의도 뒤늦게 작년에야 저작권위원회를 신설했던 것이다.
우리 출판산업은 위기이며, 작가의 경제적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그 으뜸가는 원인은 낡은 정부 정책이다. 문체부가 2017년 초 발표한 ‘4차 출판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2017~2021)’에는 콘텐츠산업 총 매출의 약 20%로 가장 큰 “출판산업 규모를 고려, 타 산업과 유사한 예산 확충 절실”이라는 표현이 나오며, 실제 2017년 정부 지원은 “게임 641억원, 영화 656억원, 콘텐츠기업 육성 637억원, 출판 367억원”이었다. 그만큼 출판산업은 문화정책도, 산업정책도 없는 사각지대에 방치된 가운데 시대에 뒤진 사양산업의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 그러나 책을 쓰고 만들어 유통하며 읽고 토론하고 즐기는 삶은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라는 현 정부 국정과제의 핵심이며, 출판산업은 사양산업이 아닌 국가 기간산업이다.
저작권 선진화에 가장 긴요한 것은 저작권자와 출판계의 연대이지만, 도서관, 독서운동과도 탄탄한 소통과 협력이 구축되어야 한다. 나아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상징하는 지식정보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교육정책과 학술정책을 포함하는 한층 광범위한 지식·문화 정책 일반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주제가 복잡하고 어려운 저작권이라서 이날 토론은 저작권법 개정, 공공대출권 도입 등에 관해 다분히 학구적 토론이 이어졌다. 그러나 작가의 저작권 피해 사례 발제에서 잘 드러났듯이, 이날 일부 작가들의 출판사에 대한 깊은 불신이 확인되었다. 토론 과정에서 작가와 출판사 사이에 다소 감정적인 언쟁이 있었고, 행사 종료 후에도 옥신각신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와 출판계 간 대화와 공동행동을 위해서는 양측이 서로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필요를 절감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갈등이 드러난 것은 오히려 성과였다.
이날 첫 발제를 맡았던 나는 한국작가회의의 오랜 회원이자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출판정책연구소장으로서 거듭 작가와 출판계 간 연대를 강조하고 싶다. 가령, 작가의 눈에는 수업목적보상금에 대한 권리를 작가에게만 인정하는 현행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자기 몫을 찾으려는 출판계의 노력이 ‘푼돈’이나 다름없는 보상금에 숟가락을 얹는 추한 짓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출판계의 요구는 작가의 권리 보호를 강화한다는 전제를 당연히 깔고 있다. 문화 선진국처럼 작가와 출판사의 당연한 권리가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쥐꼬리만 한 ‘푼돈’인 보상금이 현실화될 수 있다. 더구나 외국에서는 쌓여가는 미분배보상금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공공의 목적을 내세워 전용함으로써 작가에게 갈 물질적 혜택을 빼앗지 못한다. 우리의 뒤엉킨 저작권 현실은 법과 제도 개선에서 항상 출판사와 작가를 배제해온 잘못된 정책이 주범이다. 작가와 출판계가 오해와 불신을 넘어 연대함으로써 제도 전반의 혁신을 함께 성취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 이유이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과 교수
경향신문 2019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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