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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희생을 기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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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3-21 14:26 조회31,7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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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3·1운동이야 학교 역사시간은 물론 신문이나 영화·드라마 등 여러 매체와 장르를 통해 익히 들어온 바다. 100주년이라고 마음먹고 준비한 행사나 기획들이어서인지 내용도 새롭고 배우는 것도 적지 않다. 세월이 흘러 그날의 열기를 직접 육성으로 증언해줄 분들이 더는 남아 있지 않지만, 시간적 거리가 확보된 만큼 여러 각도에서 3·1운동을 살펴볼 여지는 더 커졌다. 더 연구가 필요한 자료도 방대하게 남아 있다.

그중 눈길을 끈 것은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데이터베이스다. ‘백년 만의 귀환, 3·1 만세시위의 기록들’이라는 이름의 데이터베이스는 3·1운동의 기초자료를 종합, 지리정보시스템(GIS)과 연동해 제공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당시 전국에서 3·1운동과 관련해 시위 1692건, 시위계획 350건, 기타활동 333건 등 모두 2464건의 사건이 발생했고, 시위 참여자는 80만~100만, 사망자는 900여명이었다.

이 데이터베이스로 가슴이 뜨거워진 까닭은 당시 3·1운동이 일어난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그 너머까지 지도를 빼곡하게 메운 사건의 불길들을 보면서 당시 3·1운동으로 정말 온 나라가 활활 타올랐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얼마 전 우리가 촛불을 들고 국가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사실을 거리 위에서 확인했듯, 당시 온 누리 구석구석 만세의 외침이 퍼져갔던 일은 내가 역사의 주체이며 새 나라는 공화국이어야 함을 자각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한편 참신한 것 같지만 떨떠름한 기획은 모 신문이 준비한 ‘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일까?’ 테스트였다. 테스트는 ‘나는 3·1운동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식의 독립운동을 택했을까’ ‘조선에서 활동했을까, 망명했을까’ ‘어디에서 어떤 최후를 맞았을까’ ‘훗날 나의 삶은 영화의 소재가 됐을까’ 등의 질문에 답하고 나면, 나에게 맞는 독립운동가를 찾아준다.

물론 혹자는 멀게 느껴지는 독립운동가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역사적 인물들을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지인 중에도 여럿이 참여해 그 결과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나눴고, 그들의 평소 성향과 결과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독립운동가들이 걸어야 했던 고초와 식민지 민중이 견뎌야 했던 고난은 생략한 채 쉽게 이뤄지는 감정이입 때문이었다.

‘같은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무거운 질문이다. ‘무장투쟁을 할까, 대중운동을 할까’를 선택하는 일이 누구나 책상 앞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였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희생을 기억하고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농민신문. 2019년 3월 20일

원문보기 :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08971/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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