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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석] 명왕성을 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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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4-02 14:04 조회31,3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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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시인이 되는가. 가령 이런 장면. “돌아가려고, 대열에서 빠져 금남로 뒷골목 들어설 때였다 하얀 하이바, 체포조 세 명이 우리를 따라붙었다 (…) 나는 모퉁이를 돌아 외진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다방이었을까, 1층이 잠겨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이 잠겨 옥탑으로 올라갔다 옥상 문도 열리지 않았다, 옥탑 어둠 속에 주저앉고 말았을 때 / 처음 들었다 / 내 심장 소리, / 열일곱 내 심장이 쿵쿵 내 몸을 울리고 옥탑의 어둠을 울리고 불 꺼진 2층 건물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시’). 아마도 90년대 초반 어수선한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소년은 광주 YMCA회관에서 김남주(1946~1994) 시인의 육성낭독을 듣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 시에는 종결어미 뒤에도 마침표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눈뜸과 깨달음 혹은 불안과 공포로 가쁜 숨이 멎는 마디마다 쉼표가 등장한다. 숨이 멎는 순간에야 소년은 자신의 심장소리를 깨닫는다. 그는 그 소리가 점점 크고 황량하게 울리며 인도하는 마침표 없는 길을 따라 비로소 시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신용목의 시집 『나의 끝 거창』이야기다.       

                     

나의 끝 거창

나는 신용목이 즐겨 구사하는 빽빽한 감각적 수사들과 처연한 서정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들이 대개는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란 뜻에서 ‘분석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그의 시는 집요하고 논리적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늘 해명을 가로막는 비밀의 수렁이 완강하게 놓여있다. 상처의 깊이라고도 불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의 완강함이 집요한 논리와 촘촘한 수사를 거꾸로 필요로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리는 때로 막연한 관념이나 고집스런 체념의 논증 절차처럼 보였고 솔직히 『나의 끝 거창』을 읽기 전에는 그의 시들에 끝내 달라붙곤 하는 죽음의 그림자들이 달갑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어느 인공호수 둘레를 도는 한 아이를 관찰하며 내놓은 다음과 같은 구절 “걸으면 걸을수록……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한 바퀴를 돌 때의 아이와 두 바퀴를 돌 때의 아이와 세 바퀴를 돌 때의 아이가 다르다는 것을.”(‘살아짐 사라짐’)이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죽음과 상처와 체념도 매번 얼굴을 바꾼다. 돌고 돌아 제자리인 것 같지만 아이는 늘 앞을 향해 달리고 변화해간다. 아니 그것을 들여다보는 눈이 매번 바뀐다. 돌이켜보면 시와 삶의 갱신을 향한 시인의 추구 또한 간단없었다. “파도, 매번 태어나고 있는 중이라서 죽음은 한 번도 생일을 겪은 적 없다”(‘기념일’) 그리고 무엇이 그 오랜 회전을 만들었가, 라는 마지막 물음을 던져야 할 무렵 예의 비밀의 수렁에서 수많은 이름들이 걸어 나온다. 『나의 끝 거창』은 바로 그 이름들, 선연히 떠오르는 얼굴들에 관한 헌사다.
 
다른 누구보다 커다란 이름은 지금은 없는 한 사람, “생일과 기일이 같은 사람” 박동학(1973~1996)일 것이다. 그는 “대구공전 재학 시절 학원자주화투쟁 중에 분신했고 자신의 생일이자 어버이날 숨졌다.”(부록 산문 중) 이 짧고 담담한 행장(行狀)에 이르는 우회로가 그토록 길고 힘겨웠다. “우리는 명왕성에 관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마치 그것을 찾으면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듯이…….”(‘서재’) 시작이자 “끝”인 거창도 역시 마침표는 아닐 것이다. 아름답다고밖에 요약할 길이 없는 부록 산문 한 편에 대해서는 감히 말을 아끼기로 한다.

 

강경석. 문학평론가

 

경향신문 2019년 3월 30일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426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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