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보육교사의 현실과 교육의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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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10-30 09:29 조회35,7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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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2조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 사립유치원 비리에 온 나라가 분개하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오만한 막가파식 대응도 기가 막힌데, 일부 유치원이 내년도 신입생 모집 중단이나 폐원을 입에 올리는 것은 말 그대로 협박이다.
이 일이 세상이 타락하여 망해가는 징조는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바로잡고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다. 단순히 정치권력 교체에 머물지 않고 정의롭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촛불의 또 한 걸음 전진인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처음 들어보는 단체인 ‘정치하는엄마들’은 사립유치원 비리가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임을 일깨웠다. 언론은 간간이 유치원의 문제를 보도했지만, 주로 폐쇄회로 카메라에 잡힌 충격적인 아동 학대 장면을 부각시키는 쪽이었다. 왜 그런 일이 자꾸 터지는지 근본 원인을 파고들지 않고 선정적 보도에 치우쳐 진짜 문제의 은폐를 돕고 말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하는엄마들’은 1년 이상 갖가지 고생을 무릅쓰며 비리 유치원 원장들의 방해와 협박, 감독 당국의 냉대와 비협조를 물리치고 마침내 사립유치원의 운영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성공했다. 엄마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발휘하는 힘은 새 세상을 열려는 여성들의 거스를 길 없는 도도한 흐름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사립유치원 논란의 와중에 보육교사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언론도 그들에게 관심이 부족하다. 삼성 백혈병 피해라는 긴 싸움을 감당한 이들의 하나인 의사 공유정옥씨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짧은 건강 상담 중에 유난히 눈물을 많이 보이는 직종, 보육교사”라는 글귀를 올렸다. 아동학대로 잘못 몰린 끝에 그만 스스로 세상을 등진 윤모 교사를 추모하는 글을 퍼온 게시글에 나온다. 우리는 보육교사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할 길을 찾아야 한다. 민주시민의 당연한 의무이다.
유치원 비리에 분노하는 엄마는 자신과 자신의 아이가 유치원의 볼모임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유치원을 쉽게 옮길 수도 없을뿐더러, 잘못된 관행에 깊숙이 물든 유치원장들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거의 두 세기 전에 나온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구빈원의 멀건 죽일망정 더 달라고 사정하는 어린 주인공의 운명을 자기 아이가 겪지 않도록 막을 방법은 있다. 바로 유치원 보육교사나 조리사의 목소리가 유치원 운영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수는 아니더라도 양심적이고 훌륭한 유치원장들은 틀림없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엊그제 어느 라디오 아침 방송에 한 요양사가 출연하여 정부 지원을 받는 사설 노인 요양원의 비리는 사립유치원을 뺨칠 정도임을 폭로했다. 용기를 낸 이 요양사에게 노동조합의 울타리가 있듯이, 일하는 여성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존중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불법과 비리에 대한 거센 분노에 맞서서 사립유치원장들은 자신의 유치원이 정부 지원을 받지만 ‘사유재산’임을 내세운다. 어쩌면 이토록 부실비리 사립대의 행태와 판박이인지. 노인 요양원은 전체의 1.1%를 빼면 모두 사설이며, 사립유치원은 국공립보다 3배 규모의 원아들을 맡고 있다. 사립대학은 전체 대학의 80%가 넘고, 전문대학은 거의 대부분이 사립이다. 주요국가 중 우리처럼 고등교육의 사학 비율이 높은 나라는 없다. 이처럼 교육기관의 국공립 비중이 낮은 상황에서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어려우며, 덮어놓고 사유재산 운운하는 억지 논리가 횡행하게 마련이다. ‘공영형 유치원’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때, 국회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시범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된 ‘공영형 사립대’도 진지하게 재론해야 한다.
큰아이가 두 살 때 외국에서 유치원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 두 분은 다 아이를 둔 엄마였다. 여러 해가 지나 교수가 되어 얻은 첫 연구년에 기회가 닿아 가족과 함께 그 유치원을 다시 찾았다. 두 분은 변함없이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우리 유치원 현실에서 엄마 보육교사들은 과연 얼마나 안정되고 행복한지, 자신의 출산과 육아 휴가는 제대로 받고 있는지, 동일 직장의 평균 근무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후략)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경향신문, 2018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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