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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인간노동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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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1-08 11:44 조회36,8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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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인공지능이 좀더 발전하면 앞으로 더 많은 인간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 가운데 11일 또 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숨졌다.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고, 2017년에는 현장실습을 나갔던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이 압착기에 눌려 사망한 바 있다. 올해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던 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이들의 죽음이 언론에 크게 알려진 것일 뿐이다. 사실 태안화력발전소 한곳에서만도 지난 8년 동안 12명의 하청노동자가 숨졌다. 사고 이후 열린 비정규직들의 기자회견에서는 다른 사례들도 소개됐다. 얼마 전 화재사고로 통신대란을 빚었던 KT(케이티)에서 선로를 복구하던 외주업체의 한 노동자는 작업 도중 차에 치이고 맨홀에 빠져 숨졌다고 한다.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어렵고 위험한 일이 몰리는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죽음의 외주화’라 할 만한 현상이다. 

그런데 정비나 복구 업무에서 유독 사고 소식이 많이 들리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생각해보면 정비나 복구 업무는 가사노동과 비슷한 데가 있다.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없으면 당장 표가 난다. 하지만 그 자체로 무엇을 생산해내는 것은 아니라고 간주돼 값어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정비나 복구는 중요 업무가 아니라면서 외주를 주고 2인1조로 해야 할 일을 한사람에게 맡기면서도 단순업무라며 임금을 적게 지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2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 하면 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간노동이 별거 아니라고들 하지만 별거 아니게 보이는 그 인간노동 없이는 화력발전소의 대단한 자동화시스템도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사고로 동료가 죽은 상황에서도 정비를 맡은 노동자들은 위험 속에 똑같이 머리를 넣고 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인공지능 역시 저절로 척척 임무를 해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온라인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전기와 통신망 설비를 보수하는 노동자로 시작해서 검색기능을 보정해주고 음란물을 지워주는 보이지 않는 인간노동이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노동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는 꽤 오래된 담론이다. 물론 시대가 변화하면 일자리의 종류가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기계와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이 하는 일, 나아가 사람 자체가 값어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라는 것이 저절로 발전하고 기계가 저절로 작동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노동이 더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에 죽고 다치는 일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 또한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인간노동 없이는 시스템이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현장에서 끝없이 희생되는 젊은 목숨을 애도하고자 한다면 인간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모든 담론을 거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8년 12월19일

 

원문보기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04246/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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