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동맹 재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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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2-28 12:19 조회33,9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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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전환의 시기다. 국가와 기업 모두 전략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미·중 간 무역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은 동맹국들에 화웨이 제품을 쓰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당장 LG유플러스는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이용하는 데 따르는 전략적 위험성이 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 현대·기아차는 미래차 전략 추진에 고비를 맞고 있다.
대전환기에는 전쟁사와 경제사가 중첩된다. 투키디데스가 지적한 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부상에 따른 스파르타의 두려움에 의해 일어났다. 중국에서도 군사적·경제적 계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송의 우수한 제철 기술은 몽골의 기병전과 결합하여 거대한 세계제국을 만들어냈다. 명과 청은 모두 병참술을 고도화함으로써 제국을 유지했다. 몽골의 침공로를 따라 뒤처져 있던 유럽에 중국의 화약이 전해졌다. 유럽에서 발전된 총포 기술은 중세 기사를 몰락시키고 중앙집권적 국가와 산업제국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패권 경쟁은 전쟁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세력이 지배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인 경우가 있다. 이러한 구조적 압박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것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법칙에 가깝다는 것이다. 필자는 앨리슨의 명제에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전쟁과 동맹 개념을 경제 분야에 확장·수정하여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20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전쟁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핵무기가 사용된 완전 파괴의 전쟁이었다. 냉전시대의 핵무기 경쟁은 ‘공포의 균형’을 가져왔으며, 미국은 구 소련과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군사동맹을 맺고 서구 진영 안에서 독일과 일본의 경제적 부흥을 도왔다.
구 소련이 붕괴한 후 미국이 새롭게 인식한 군사적 상대는 비국가 무장집단이었다. 핵무기를 보유했거나 보유하려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압도적 군사기술상 우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국가 간 전쟁의 위험이 감소하면서 군사동맹이나 경제적 동맹 개념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의 세계경제 편입을 용인했고, 중국은 고도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2010년대부터는 미·중 간 세력전이를 둘러싼 긴장의 시대에 들어섰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미국은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와 제조업 르네상스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2011년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하면서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공표했다. 한편 중국은 2010∼2011년경부터 내수 육성, 산업구조 고도화를 내용으로 하는 ‘성장 전략의 전환’을 언급했다. 2013년에는 미·중 간 ‘신형대국관계’, 아시아 지역에서의 ‘일대일로’ 구상을 제시했다.
현재는 군사적·경제적 동맹의 재편 또는 재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때다. 가장 중요한 갈등의 축은 미·중관계다. 미국과 중국은 이전의 적대·협조 관계에서 이제 적대·비협조 관계로 전환하고 있다. 군사적 차원에서는 전면전이 발생하기 어렵지만,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미국과의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무역, 생산·기술, 금융·통화 등 분야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무역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이는 다시 생산과 기술에서의 표준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통화전쟁은 일방 또는 쌍방에 치명상이 될 수 있어서 아직은 양국 모두 신중한 편이다.
한·미 간, 미·일 간 군사동맹은 가장 높은 단계의 협조 행동을 조약 형식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이후 제시된 미국 우선주의에 의해 군사적 동맹·협조 관계의 변동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중 간 비협조 관계가 증폭될수록 미국은 한국·일본 등 동맹국의 이탈을 방지하려 할 것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군사적 적대·비협조 관계를 적대·협조 관계로 전환할 여지도 만들어지고 있다.
경제전쟁은 통신, 무역, 이동성, 생명 분야에서의 지능화 경쟁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컴퓨터를 통해 지능화하는 모든 산업이 국가 안보와 연결되게 되어 있다. 중국은 2014~2015년부터 국내 시장 보호를 통한 디지털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이코노미스트’에 의하면, 이미 오바마 대통령 시기부터 ‘칩 전쟁’은 시작되었다. 미국은 유럽과 동아시아 동맹국과의 협조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한국의 핵심 산업과 기업들 모두 이들 전쟁터를 헤쳐나가야 한다. 동맹의 재편 속에서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각 산업·기업이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산업·기업 간 전략적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협력적 대응의 길을 찾는 것이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
경향신문 2019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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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2192020005&code=990100#csidxc61eae643b3f09f8751d936cb433b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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