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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새로운 평화, 오래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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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6-21 17:46 조회37,4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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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다음날 역사는 과거로 되돌아갔다. 그날 지방선거에서 냉전과 분단에 기대던 수구 보수 세력이 몰락했다고들 했지만 분단은 여전히 강고하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남북 정상이 만나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전세계에 엄숙히 천명”한 지 두 달이 되어 가지만, 그날 전세계에 보여준 것은 오래된 분단의 과거였다. 거기에 가슴 벅찬 평화의 미래는 없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튿날인 13일 뉴욕에서는 유엔 총회 제10차 긴급 특별 세션이 열렸다. 이날 팔레스타인 민간인 보호를 위한 결의안에 한국 정부는 기권하고 북 정부는 찬성표를 던졌다. 분단은 한반도 땅 위에만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도 갈라져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고, 국제정치를 대하는 입장도 갈라져 있었다. 민간인을 보호하자는 국제법적이고 인도주의적인 대의명분에서조차도 남과 북이 만나지 못한다면 한반도 평화는 가능할 것인가. 그런 ‘한반도 평화’는 무슨 의미일 것인가.


지난 3월30일부터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행진을 이스라엘군은 첫날부터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비무장 시민뿐만 아니라 기자와 의료진까지 저격하여 130명 이상이 숨지고 수천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 결의안은 이스라엘군의 과도하고 무차별적인 군사력 사용을 개탄하고,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을 준수하라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는 그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찬성표를 던진 120개국과 동참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결의안에 반대한 8개국에 미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단서가 아닐까. 미국은 이 결의안을 좌절시키기 위해 하마스의 폭력 사용을 비난하는 수정안을 제출하기도 했고, “이 결의안에 지지하는 것은 테러리스트와 협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과 끝까지 같이했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정도로 강력한 친이스라엘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과의 공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충직한 골프 파트너’ 아베 정권마저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 앞에서 이러한 논리는 설득력을 잃는다. 바로 전날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한 북조차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는가. 다른 나라 민간인 보호는 별개의 문제이니 ‘우리의 평화’는 지지해달라고 전세계에 호소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도 북-미 정상회담도 다시 봐야 한다. 북-미 공동성명 3항은 충격적이다. 이 조항에서 트럼프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지 않았다. 김정은만이 약속했다. 북의 ‘수소폭탄급’ 양보다. 이전까지 북은 자신이 핵무기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미국도 핵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은 판문점선언을 이 조항에서 언급하며 원칙적 입장을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명분을 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미국 핵우산을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용인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후략)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 2018년 6월 20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9928.html#csidx74888417ae62c339a5bd0c18d65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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