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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실패한 누진제, 이제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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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8-24 10:39 조회36,3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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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가 된 누진제 논란이 꽤 후진적이다. 누진제의 본래 취지는 팽개치고 돈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누진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전기소비를 억제하고, 전력예비율을 조절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논란은 소비억제가 아니라 요금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요금폭탄’을 방지하기 위해 누진제를 완화해주자거나, 누진제를 없애면 1400만가구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거나, 누진제 완화로 한국전력의 수익만 수천억원 감소했다는 주장만 들릴 뿐, 누진제가 정말 제 구실을 하는지 따져보자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누진제는 원래 취지에 비추어볼 때 실패했다. 전기소비가 인구나 소득 증가보다 훨씬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가정용 전기소비는 20% 이상 증가했다. 일반용의 28%, 산업용의 46%보다 적지만, 선진국들 중 최고 수준의 증가율이다. 혹자는 누진제가 적용되었기에 산업용 증가율보다 낮은 20%로 묶어둘 수 있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산업용 소비가 터무니없이 높게 늘어난 것일 뿐이지 누진제가 효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유럽 등지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가정용 전기소비는 낮은 수준이 아니다. 가구당 전기소비는 연간 3500kwh(킬로와트시)로 유럽연합 평균과 비슷하다. 일인당 소비로 비교하면 낮다는 주장이 있지만, 유럽에서는 전기를 난방온수용으로 사용하는 가구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용으로 넘어가면 증가율이나 소비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이다. 사실 산업체나 서비스업체들의 전기 오남용은 심각하다.


전기소비 억제라는 누진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 한다면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소비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안이 이들 부문의 전기요금을 크게 올리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중소업체 등이 중심이 되어 거세게 반발하고, 그 결과 요금이 찔끔 올라가는 선에서 정리되고 만다. 그렇다고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규모 차이가 크지 않은 주택과 달리 업체들의 규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기소비를 줄여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요금 인상만이 아닌 창의적인 제도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고려할 만한 것이 ‘인센티브제’이다. 해마다 연간 사용량을 비교해서 감소나 증가에 비례해 요금을 인하해주거나 인상하는 것이다.


역진과 누진을 동시에 도입하자는 것인데, 연간 전기사용량의 변동이 크지 않은 일반용에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사무실에서 지난 5년간 평균 1만kwh를 사용했는데, 다음해에 사용량이 2만kwh로 두 배 증가했다면 요금을 크게 올려받고, 그 절반인 5000kwh로 줄어들면 요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정교하게 고안하기만 하면 산업체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연간 전기사용량과 생산량의 증감을 비교해 요금을 올리거나 낮추면 되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체에서 생산량은 2배 증가했는데 전기소비는 10% 늘어났다면 전기요금을 크게 깎아주고, 반면에 전기소비가 3배 증가했으면 요금을 2~3배 높이는 것이다. 물론 전기 오남용 관행에 젖어 있는 기업체에서는 반발이 심하겠지만, 이렇게 인센티브를 주는데도 전기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기업은 퇴출되는 것이 마땅하다.(후략)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한겨레신문, 2018년 8월 23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232013015&code=990100#csidx24d51d30dbd1042969296f296ca11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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