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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헬조선과 심판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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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9-10 16:45 조회36,4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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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함께>가 1·2편 연달아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엄청난 인기의 비결이 장쾌한 볼거리와 오락성만은 아닐 터다. 영화에 담긴 시대정신에, ‘헬조선’을 향해 촘촘하게 날려대는 비판과 풍자에 관객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지옥은 저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이 저승의 지옥 못지않게 끔찍한 헬조선임을 끝없이 보여준다. 1편의 주인공인 자홍은 돈을 벌기 위해 낮에는 소방관으로 불을 끄고, 밤에는 고깃집에서 불을 피우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간다. 돈의 노예가 되는 것만이 그가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자홍은 어린 시절 어머니·동생과 동반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장애인인 어머니는 설상가상으로 불치병까지 앓고 어린 동생은 영양실조에 빠지다보니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였다. 하지만 세상은 물론 저승의 판관들마저 자홍의 선택을 비난한다.

 

영화는 2편에서도 막상 어려운 순간에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커녕 관심조차 없는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철거촌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노인은 주민센터를 찾아 장애인 행세를 한다. 손자를 기르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주민센터의 직원은 노인에게 언제 고아가 될지 모를 처지인 손자를 위한 현실적 해결책이라며 해외입양을 권한다. 환생을 꿈꿔온 저승차사조차 이런 현실을 본 뒤 코스피 100위 안쪽의 재벌 2세가 아니라면 한국은 저승보다 더 지옥이라면서 환생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헬조선이 지옥이나 다름없는 것은 그저 가난의 참상이나 낙오자를 만드는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망자들이 저승의 일곱 지옥을 거치면서 심판을 받아 환생하는 과정을 보면 지금 한국의 현실이 왜 지옥도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나마 열심히 착하게 살았다고 귀인 대접을 받는 주인공들마저 자신들이 정말 완벽하게 선하고, 억울하고, 가난한 존재로서 힘도 없고 흠도 없음을 입증하는 데 간난신고를 겪는다. 보다보면 정말 주인공이나 되니까 저 관문을 다 통과하는구나 싶은데, 진짜 문제는 이게 과장돼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노오력’이 충분치 않았던 것은 아니냐고, 네가 정말 피해자가 맞느냐며 따져 묻는 권력의 행동은 현실에서 너무나 낯익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적 약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고 그 시험대를 통과한 고통과 통과하지 못한 고통을 가리는 것은 종종 세상의 더 큰 죄악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영화를 보면서 입증지옥의 심판대를 겨우 통과한 주인공의 운명에 대해 안도하기보다는 저승이건 현실이건 끝없이 약자에게만 질문을 던지는 권력을 문제 삼아야 한다.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8년 9월 5일) 

 

원문 보기: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297837/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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