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석] 넘어짐과 일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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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1-30 11:09 조회35,4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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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기엔 쉽지만 두 번째부터는 조금씩 어려워진다. 쓰인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품은 사연들이 간단치 않아서다. 박준의 두 번째 시집(『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을 머리맡에 두고 하는 이야기지만 소설에서와 달리 시에서는 사실 흔한 일이다. 어떤 일의 경위와 인과를 조목조목 해명할 겨를이 시에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박준의 시가 품은 사연들이 조금 ‘다르게’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 봄에는 널려 있었다”(‘그해 봄에’)고 말할 때 그 일들이 가리키는 것은 단지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시 속의 “당신”이 어느 봄에 죽으려 했던 구체적 사건만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널려 있었다”고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박준의 시에 드러난 느낌과 생각들은 누구나 한번은 겪었음 직한 무엇으로 자주 넓어진다. 누구나 겪어본 마음에 관한 이야기들이기에 쉽게 읽힌다고 할 수 있지만 시인 또는 시적 화자가 그런 마음들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종종 심연 가운데 잠겨있기에 이를 궁금해 하는 누군가에겐 미로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해 읽을수록 실은 그것만 오롯이 남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침 ‘마음이 기우는 곳’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두 면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목 아래는 빈 페이지이고 그 오른쪽은 제목 없이 받아 적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전화통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호남 사투리를 쓰는 초로의 여인이 통화의 주인공이고 배경은 어느 대학병원이다. 계절적 배경을 따라 부가 나뉜 이번 시집의 2부에 수록되어 있는데 “열무는 거두었는가?”라는 통화의 첫마디로 이 시는 여름을 입는다. 입말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따라 전해지는 이야기는 여인의 가족사를 관통하는 생로병사와 살림살이에 관한 것들이다. 며느리인지 딸인지가 손녀를 막 낳으려는 참이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설레는 목소리는 살짝 떠 있고 그 덕에 두서없는 산문임에도 시적 긴장이 유지된다. 막 수술이 끝났는지 “아침저녁으로 달구새끼 모이 좀 주고 응응 욕보소잉”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 장면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여기에 시적으로 특별한 무엇이 담겨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답할 말이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왼편에 놓인 제목 아래 빈 페이지를 포함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여인의 전화통화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나’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너른 여백이 일러주는 것처럼 이 ‘나’는 끝내 해명되지 않는다. 서정시답게 박준의 시 속에서도 ‘나’는 늘 문면에 나서있지만 그럼에도 후경으로 밀려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게 되는데 그것도 대개는 이 ‘나’의 현재가 투명하게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박준은 ‘나’를 통해 세상을 보여주기보다 ‘나’가 마음을 기울인 대상을 통해 가까스로 ‘나’의 존재를 암시하는 시를 쓴다. 대상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듯한 시적 태도가 이와 무관하지 않고 현재를 유보한 채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소환해내곤 하는 작법도 그 근처다. 그러나 읽는 이에게 위화감을 거의 주지 않는 이런 방식의 시 쓰기가 얽히고설킨 시속(時俗)에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고만 이해한다면 얼마간 서운한 일이 될 것이다. “언 손이 녹기도 전에 / 문득 서럽거나 /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 우리는 밥에 숨을 불어가며 / 세상모르고 먹을 것”(‘좋은 세상’)이라는 다짐이 그렇듯 박준의 시는 나와 세상 안팎의 소란을 일일이 따져 묻지 않고 물러서서 자리를 내주고 감싸준다. 속없이 무작정 그러는 것이 아니라 “넘어짐과 일어섬 그마저도 지나서”(‘가을의 말’) 그렇게 하기에 그것은 힘이 있고 든든하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도 대개는 손 내미는 사람들의 이런 겸허에서 나온다.
강경석. 문화평론가
중앙일보. 2019년 1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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