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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분단체제를 넘어, 한반도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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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6-05 13:53 조회39,4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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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 한반도 정세는 반전과 역전을 거듭했다. 세계체제와 결합된 견고한 분단체제를 해체하는 데에는 우여곡절의 길이 불가피하다. 말 그대로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호흡을 길게 하면서 전환의 진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확인해둘 것은 극심한 군사적 대결체제가 막다른 길에서 임시 평화체제로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임시 평화체제를 만들어낸 동력은 분단체제를 구성하는 요소들로부터 나왔다.


북한은 2017년을 통해 핵무기 체계를 크게 진전시켰고 그 완성을 선언했다. 이후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핵강화·고립심화 또는 비핵화·경제건설의 두 가지 길이었다. 미국은 적극적 개입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였고, 중국도 분단체제에 개입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촛불혁명과 정권 교체로 남북 간 대결정책의 지지 축이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집행하면서 임시 평화체제를 형성하는 방아쇠 역할을 수행했다.


북의 핵무장화는 분단체제의 모순과 긴장의 절정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북의 핵무기는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일본, 그리고 북한에도 결국은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촛불혁명의 힘은 한국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와 같은 극단적 대결정책을 재연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었다. 대결의 축 일각이 무너지면서 긴장의 균형이 깨졌다.


기존 시스템의 힘이 남아 있어서 작용·반작용의 일진일퇴가 이어지겠지만, 이제 대결구조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 임시적 평화체제가 제도적 평화체제로 정착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세계체제 전환의 흐름이 시작되었고 그 흐름은 쉽게 소멸하기 어렵다. 수시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관례가 쌓이면서 정치군사 대화 채널들이 상시적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형태의 남북대화 채널은 한반도형 양국 간 연합의 거버넌스를 진화적 방식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남북 간 정치군사 대화 채널과 함께 사회문화 교류 채널도 진전될 것이다. 사회문화 교류는 넓은 의미에서 인도적 지원을 포함하는 민간 교류 일반을 의미한다. 교류의 주체에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정당과 의회, 기업, 시민사회가 포함된다. 시민사회에는 대중단체, 종교단체, 시민단체, 전문가단체,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북한은 물론이고 남한에서도 국가 시스템은 집권적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남북 교류는 정부 차원의 필요에 의해 통제·관리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특히 북한의 경우 남한 시민사회와의 교류보다는 국가 차원의 교류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사회문화 분야의 남북 교류가 양적으로 증대하는 것은 역전되기 어려운 추세이다. 확대된 사회문화 교류를 위해 북한에는 일정한 범위에서 남한의 시민사회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국가주의적 시민사회가 건축될 것이다.


평화체제를 제도화하는 문제가 어느 정도 고비를 넘고 나면 경제적 교류협력은 폭발적으로 증대할 것이다. 이는 북한이 경제건설을 위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세계체제에 연결된다는 것은 자본주의화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개혁·개방 모델로는 중국 또는 베트남 모델이 거론되고 있다. 두 모델 사이에 급진성·국가주도성의 차이가 있지만, 두 모델 모두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시장화·자본주의화에 나설 경우 후발국으로서 발전지상주의의 욕망은 더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향후 정치군사, 사회문화, 경제 등 각 분야에서 남북 교류와 그에 기초한 국가 간 연합으로 밀고 가는 동력이 상승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교류의 확대, 기존 방식의 북방정책은 남북연합을 발전지상주의 국가연합으로 밀고 가는 힘을 더 강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정이고 남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발전주의의 관성을 그대로 방치하면, 남과 북 모두에 자본주의의 퇴행적 측면만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후략)

 

이일영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
(경향신문, 2018년 5월 30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302105015&code=990100#csidxabb9330cb5ff568bcac9071673ab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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