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50~400㎞ 오차…‘찢어진 우산’처럼 불안한 방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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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5-08 12:54 조회1,8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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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1000㎞” 일본은 “650㎞ 이상”군은 “600여㎞”…전시 방어 우려한·미·일 공조, 무기력한 ‘규탄’만 ‘힘을 통한 안보’ 허구…대안 모색을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극초음속 미사일 첫 시험발사를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제 대한민국에서 사는 게 안전한가? 이래 가지고 한밤에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대한민국의 안보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짜릿하지만 공허한 말뿐이다. 그 말잔치 속에 조선인민공화국(북한)의 핵무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증대하고 있다.
지난 2일 북이 시험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은 대한민국의 국방이 얼마나 허술한지 여지없지 보여준 사례다. 미사일 방어망이 사실 구멍이 숭숭 뚫린 우산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서울인 줄 알았는데 오산에 떨어지면
한국 국방부는 이 미사일 발사 사실을 포착했을지는 모르지만 탄두의 탄착점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발사 당일 합참은 미사일 사거리를 600여㎞라고 평가하며 함경북도 알섬을 지나쳐 동해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다음날 북의 조선중앙통신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공표하며 “1차 정점고도 101.1㎞, 2차 정점고도 72.3㎞를 찍으며 비행해 사거리 1000㎞로 날아 조선 동해상 수역에 탄착했다”고 주장했다. 사거리뿐만 아니라 비행 고도까지 공개하는 자신감을 보였는데, 그 사거리가 합참의 발표보다 400㎞나 더 길다고 한 것이다.
북의 발표가 전적으로 사실인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들은 미사일의 고도와 항적을 보여주고 있다. 평양 인근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동북 방향으로 비행하다가 극동 러시아 해안을 끼며 왼쪽으로 선회해 1000㎞ 정도의 지점에 떨어지는 모습이다. 탄두부의 측면기동능력을 확인했다는 발표와 일치한다. 또 미사일이 정점을 찍고 활공하다가 다시 한번 비상하는 형태인 ‘활공도약형’ 비행궤도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한국 군당국은 이 미사일의 도약과 선회 비행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단순 탄도미사일로 착각하여 탄착점을 추정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 400㎞는 어마어마한 거리다. 전쟁 상황을 가정한다면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 북이 미사일을 발사해서 한국군은 그 탄두가 부산에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미사일 방어체계를 가동해 그 탄두를 요격했다고 발표하는 순간 핵탄두가 일본 오사카에서 폭발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단순히 북의 미사일 요격에 실패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미사일 방어체계 자체가 붕괴했다고 해야 하는 수준이다.
물론 북의 발표가 과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자위대의 발표와 차이가 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미사일 사거리를 “650㎞ 이상”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맞느냐 일본이 맞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한국과 일본은 사거리를 50㎞이상 차이 나게 판단하고 있다. 전시라면 한국군은 북의 미사일이 서울에 탄착한다며 미사일 방어체계를 가동했지만 정작 탄두는 오산 공군기지에 떨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북이 미사일을 남쪽으로 발사한다고 가정하면 한국군은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사일 방어체계는 몇미터의 오차도 허용이 되지 않는 정밀한 체계여야 의미가 있다. 핵탄두가 날아온다면 그 탄두를 대충 맞혀서는 피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가끔 러시아 미사일을 요격했는데 요격된 탄두가 엉뚱한 곳에 떨어져 폭발 피해를 주는 일들이 있었다. 그나마 비핵탄두이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핵탄두라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성공했지만 핵폭탄 자체를 파괴하지 못하면 핵폭발물이 용산에 떨어지든 청와대에 떨어지든 서울은 대파될 것이고 참혹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미사일은 미세한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 그런데 400㎞ 또는 최소한 50㎞의 오차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방어체계의 신뢰도를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설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핵 미사일 고도화에 ‘사실상 무대책’
제대로 된 정부라면 지금쯤 발칵 뒤집어졌어야 한다. 합참이 나서서 “북한이 주장하는 비행거리는 과장된 것”이라며 자기변호를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나서서 감사에 착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확한 탄착점이 어디였는지를 객관적인 정보로 확인하고, 북의 주장이 과장된 것인지, 합참의 발표가 부정확한 것인지, 일본의 발표가 틀린 것인지, 한-일 간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지 엄밀히 조사를 하고 대책을 세워도 부족한 판이다. 국가의 안보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이러한 책임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이 나와서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명백한 도발 행위로서 강력히 규탄하는 바입니다”라며 한가한 말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한·미·일 공조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준일 북핵외교기획단장과 정 박 미국 대북고위관리, 하마모토 유키야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다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위반으로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명백한 도발 행위”라고 강력히 규탄했다. 강력한 규탄이 미사일을 막아주던가?
경제제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제재가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북이 국경을 스스로 봉쇄한 와중에도 핵무기 대량생산에 매진했고, 다종다양한 미사일을 개발하고 배치하고 있다. 북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조차 제재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지 벌써 여러 해가 됐다. 유엔의 제재 전문가 패널은 조만간 해체된다. 북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겠다는 제재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 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지 이미 오래다.
한·미·일은 또 미국 B-52H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에 맞춰 제주 동남방 쪽 한·일 방공식별구역(ADIZ) 중첩구역 일대에서 올해 첫 공중훈련을 진행했다고도 한다. 아마 사전에 계획됐던 훈련이었겠지만, 설령 북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한 훈련이었다고 해도 한국 방어의 구멍을 메워주지는 못한다. 핵탄두가 폭발한 이후에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들어오면 이미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가, 파괴된 시가지가 복구되는가?
윤석열 정부의 ‘힘을 통한 안보’는 이렇게 ‘구멍 뚫린 안보’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북의 핵미사일은 대한민국의 방어망을 찢어진 우산으로 만들고 있는데 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는가.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24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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