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언]나는 이제 달리지 않고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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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5-08 12:57 조회1,7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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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집 이장욱 지음 l 문학과지성사(2024)
이장욱의 최근 시집 ‘음악집’에 수록된 각각의 시들을 하나의 언어로 수렴해서 말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 같다. 이 세상을 이루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제각기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굉장한 사실을 추상화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방도가 우리에게 없듯, 시편들은 한 권의 책에 묶여 있으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자연스러운 성질을 찾아가려는 동작을 제각기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스러운 성질을 찾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리 없다. 시는 오히려 그게 좀처럼 이뤄질 수 없어서 만들어지는 긴장과 표표한 외로움, 이것이 엮어내는 견딤의 상태를 각자의 것으로 드러낸다.
이런 물음은 던져볼 수 있겠다. 모두 다른 성질, 각자의 목소리를 지닌 존재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나. 그조차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이들이 있는 곳이 ‘지금 세상’이기 때문에, 곧 중력의 영향권을 공유하고 있어서일 텐데 이는 시집 곳곳에서 하강하는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비가 내리든, 피가 흐르든, 타박타박 걷는 발을 향해 있든, 시의 시선은 일상적 경험과 현상의 피막을 뚫고 하강하는 방향성을 지님으로써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란 지금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들임을 받아들인다. 하강의 움직임은 각각의 존재가 제 몸을 드러내는 매우 정직한 방식이다. 이제 읽을 시에선 ‘눕는’ 행위가 그러하다.“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영원을 잃어버렸다./ 자꾸 잃어버려서 믿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 그것이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이제 달리지 않고 누워 있다.(…)// 풀밭에는 아주 작은 음악들의 우주가 펼쳐져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쉽다./ 진실로 그것을 느끼는 것은 모로 누운 사람들뿐이지만/ 누구의 왕도 누구의 하인도 아니어서/ 외롭고 강한 사람들뿐이지만// 은륜이 떠도는 풍경을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것/ 햇빛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물의 일렁임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달려가다가 멈추어 서서 문득 잔인한 표정을 짓는 일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겠지만// 오늘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매일 명확한 것들만을 생각하였다./…/ 사랑을 하려고// 석양이 내리자/ 아무래도 나를 바라보는 이가 보이지 않아서/ 텅 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을 적습니다’ 부분)
삶은 영원하지 않으므로 ‘계속된다.’ 이를 화자는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면서야 깨닫는다. 주어진 유한성을 넘어서려는 목적이 없다면 무엇을 위해 사는가, 왜 사는가. 이제부턴 이런 질문에 시달릴 법도 하지만 시는 다른 선택을 한다. “달리지 않고 누워 있”기로 한다. 땅에 바짝 다가가 머리를 누일 때, 우리 존재의 발원지에 해당할 밑으로, 아래로 밀착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디 멀리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곳, “아주 작은 음악들의 우주” 한가운데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구의 왕도 누구의 하인도” 아닌 다만 “외롭고 강한” 사람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가 따로 있지 않더라도, 지금 세상에서 “사랑을 하려”는 이로.
고유한 내적 필연성을 지각하는 계기인 ‘눕는 행위’는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 온 표현이기도 하다. 시인 김수영이 ‘풀이 눕는다’고 할 때, 우리는 땅에 머리를 누이는 몸짓으로부터 어떤 위엄을 느낀다. 밑으로, 아래로, 땅으로, 뿌리로 바짝 다가가는 행위, 하강의 움직임은 어쩌면 청사진을 그리려는 선거 시기의 우리에게 모종의 힌트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24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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