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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영화 ‘1987’이 던져주는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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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1-17 09:55 조회39,0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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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은 6월항쟁과 그 전후의 역사적 맥락에 비춰볼 때 큰 흐름과 세부 사실 모두 흠잡을 대목이 드문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교과서적이라는 평가가 작품의 성취를 깎아내린다며 불만을 품을 관객도 있겠지만, 내 말은 시간이 지나면 고전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라는 뜻이다. 어쨌든 사람마다 제각기 할 말이 많은 영화가 <1987>이다.


이 영화의 뛰어남은 최근의 수작 <택시운전사>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후자에 등장하는 1980년 광주의 택시 기사들이 도대체 왜 군대가 광주 시민에게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모습은 실감 나지 않는다. 실제로 당시 택시 기사들은 직업의 특성상 시위 진압의 잔혹한 실상을 직접 목격하기 쉬웠을뿐더러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다 계엄군에게 걸려 죽고 다쳤다. 강경 진압의 정치적 의미를 명확히 인식한 그들은 마침내 목숨을 걸고 차량 시위의 선두에 서서 공수부대 정예 병력을 수세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실제 역사와 달리 <택시운전사>는 무고한 시민과 사악한 권력이 맞서는 감상주의적 구도에 갇히고 말았다. 반면에 <1987>은 다양한 인물상을 훨씬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그리면서도 기록영화처럼 냉정하기도 하다.


그러나 <1987>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그중에는 귀담아들을 얘기도 있지만, 오독에 가까운 발언도 없지 않다. 특히 이 영화가 다루는 승리의 서사가 ‘586세대’(옛 ‘386세대’)의 신화를 굳힐 위험이 있다는 (SNS에서도 자주 만나게 되는) 비판은 좀 지나치다. 586세대의 일부가 1980년대 학생운동의 경험과 성과를 과장하고 독점하려는 경향 탓에 신화화의 위험은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과하면 피상적인 세대론의 함정에 끌려 들어갈 수 있다.


영화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듯 6월항쟁은 586세대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도화선이요, 주력이기는 했지만, 6월항쟁은 어디까지나 전 국민적 사건이었다. <1987>에 세대론의 틀을 들이대는 비판적 평가에 자신의 경험을 여전히 과잉해석하는 586세대와 그 언저리 연령대의 (다분히 남성적) 감수성이 숨어 있을 역설적 가능성을 냉철히 따져볼 일이다.


의외로 별로 언급되지 않지만, 연희(김태리 분)가 교도관인 삼촌(유해진 분)과 다투다가 아빠의 죽음을 입에 올리는 장면도 지나칠 수 없다. 노동조합을 주도한 아빠가 등을 돌린 동료들 탓에 상심해서 술을 가까이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노조를 탄압하던 사람들을 미워해야지 왜 아빠 친구들을 미워하느냐는 삼촌의 말은 옳지만, 이 장면에서는 실패와 상처를 두려워하는 연희의 현실적인 자세가 관객에게 더 와닿는다. 이처럼 세심한 연출 덕분에 연희 아빠의 죽음이 지금 이 순간도 노동현장에서 숱하게 터지는 일임을 환기하는 효과도 은연중에 확보되며, 힘겨운 과정을 거쳐 항쟁의 현장에 합류하는 연희의 모습이 미화되는 느낌이 없다.


개봉 영화를 두고 찬사와 비판이 엇갈리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저 이 영화를 보지 않는 선택에 머무르지 않고, 절대 보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대통령 일행이 영화를 관람하는 자리에 함께하고서도 차마 영화는 볼 수 없어 발길을 돌린 사연은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광주항쟁에 참여했고 나중에 간첩조작 사건에 얽혀 긴 감옥살이를 한 강용주씨의 입장을 아는 사람은 적다. 그에 따르면, 박종철 고문사의 진상 규명을 돕는 의인으로 묘사된 교도소 보안계장의 실제 인물은 ‘간첩사건’으로 갇힌 재소자들에게는 혹독한 방식으로 전향을 강요하는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 강용주씨만이 아니라 그에게 당한 공안 사건 연루자들 여럿이 입을 모아 증언하는 사실이다. (후략)

 

김명환

(경향신문, 2018년 1월 11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112041015&code=990308#csidx2af9ee92667b2af81c116f74eb3c4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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