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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2-01 17:48 조회38,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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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으로 말하자면 미국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다툼이 얼마나 심하면 국회에서 국가예산을 기일 내에 통과시키지 못해 연방정부가 문을 닫는 사태가 다 발생하겠는가. 정쟁을 일삼는 것 같은 미국 정치인들도 단합할 때가 있다. 외교정책이 걸려 있으면 정당의 이해를 뛰어넘어 단결한다. 물론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민주·공화 양당의 지지라는 비뚤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도 “정쟁은 해안에서 멈춘다.” 이것은 중요한 전통이 되어 있다.

벌써 오래된 과거가 되었다.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갈라진 서독 안에서 또 정당들은 갈라져서 정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도 정쟁을 피한 금도가 있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화해를 추구한 ‘동방정책’은 기민당의 에르하르트 총리가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해 이를 집행하게 했다. 브란트는 1969년 총리가 되어 이 정책을 계승했다. 그는 이듬해에 모스크바 조약과 바르샤바 조약을 체결해 유럽의 냉전 해소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 했다.

1982년에 정권이 기민당으로 넘어갔다. 사민당의 정책을 뒤집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 헬무트 콜 총리는 실업정책, 의료제도, 장학금 등 여러 사회경제 분야에서 사민당과 다른 정책을 집행했다. 하지만 유독 동방정책은 바꾸지 않았다. 그 기조를 유지한 덕분에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들의 동의 속에 결국 1990년 통일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오데르나이세 동쪽의 땅을 폴란드 영토로 인정하고, 수데텐란트에 대해 어떠한 주장도 하지 않겠다는 조약을 체코와 맺기까지 했다. 브란트 총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까지 해결한 것이다. 동방정책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브란트였지만, 그 시작도 기민당이었고 그 끝도 기민당이었다. 거기에 정쟁은 없었다.

가슴이 섬뜩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대북정책만 나오면 칼바람이 휘몰아친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이 논평했다. “어차피 깨질 평화이고 약속들이라면 빨리 깨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금강산 합동공연을 취소한 것은 북이 잘못했다. 하지만 공연 하나 취소됐다고 어서 빨리 평화를 깨자고 해도 좋은 것인가. 올림픽을 두고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남북관계를 앞에 두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것이다.

해서 문재인 정부가 나서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라도 찾아가야 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선수들이 이제 됐다고, 일어나시라고 할 때까지 장관 한명은 무릎을 꿇고 있어야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가 선수들을 하늘로 모셔야 촛불정부라 자칭할 수 있지 않은가. 이래야 시민들도 마음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북도 움직일 수 있다. 장관이 선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면 북도 깨달을 것이다. 그런 깨달음이 있어야 금강산 공연을 취소한 자신의 옹졸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트럼프 정부도 숨 쉴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새해 국정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을 말하면서도 ‘최대의 압박’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거기에 선제타격이나 군사적 옵션은 없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도 “동맹국 및 동반자 국가들과 협력”해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겠다고 하고 있다. (후략)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 2018년 1월 31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0275.html#csidx993c4c8f618b9bfb68160bd5eb5e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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