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정치인, 기자, ‘국민’ 또는 무지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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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06-08 16:18 조회38,9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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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7038.html
날씨도 쾌청하고 새 대통령의 행보도 산뜻해 기분 좋은 오월이었지만, 진보언론과 문재인 지지자들의 갈등으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는 벌집 쑤셔 놓은 것 같았다. 이제 먼지가 가라앉은 듯하지만, 재연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뤄보려 한다. 가라앉은 먼지를 들쑤시지 않기 위해 구조적으로 접근해보자.
논의의 실마리로 한 정치인이 했다는 말을 인용하고 싶다. “정치인이 다 아는 걸 기자만 모르고, ‘국민’이 다 아는 걸 정치인만 모른다.” 냉소적이지만 교훈적인 경구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논란이 된 갈등을 다루려면, 역시 냉소적이지만 교훈적인 고리를 하나 더 채워 넣어 무지의 삼각형을 완성해야 한다. “기자가 다 아는 걸 국민만 모른다.”
왜 정치인이 다 아는 걸 기자는 모르는 걸까? 정치인은 기자에게 주요 취재원이다. 후자는 전자를 비판하는 것을 업으로 삼지만, 정보의 면에서 전자에게 의존한다. 그리고 정치인은 정보라는 미끼에 프레임이라는 바늘을 숨긴다. 낙종의 공포와 특종의 희열 사이에 놓인 기자는 미끼만을 떼먹을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것을 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이 다 아는 걸 정치인이 모른다. 정치인이 만나는 사람은 지지자 아니면 잠재적 지지자들이다. 정치인도 머리로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생각해보긴 한다. 그러나 “사랑해요”를 외치는 지지자들의 열기에 그런 생각은 멀찌감치 달아난다. 그 결과 국민이 보기엔 가망 없는 선거에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국민은 왜 저럴까 싶지만, 그는 ‘제 맘속의 국민’만 믿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 결과로 정치인 뒤통수를 내려치는 그 국민이 기자가 다 아는 걸 모른다. 늘 보도될 만한 것을 선별하고, 엠바고와 데스킹과 편집을 겪으며 사는 기자는 뉴스 세계의 지배자는 사실이 아니라 선별된 ‘편향적’ 정보라는 것을 안다. 여론을 조작하려는 사악한 기자든, 편향과 싸우려는 성실한 기자든, 이런 일을 줄일 수는 있어도 완전히 피할 수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국민은 뉴스 없이 정치현실에 접근할 수 없다. 기자가 뉴스의 사제라면, 국민은 뉴스의 신자인 것이다. (후략)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7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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